'웬 난리 블루스'라는 말이 있다. 뜬금없이 요란을 떨 때 하는 소리지만 한편으론 블루스에 대한 우리 인식의 천박성을 반영한다. 지금도 블루스하면 상당수는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등장하는 ‘룸살롱 음악’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어디 그렇던가. 19세기 미국 흑인들에게서 시작하여 재즈, 리듬 앤 블루스, 록 등 현존하는 모든 대중음악의 뿌리가 되었던 것이 바로 블루스다. 로버트 존스와 머디 워터스 등 미 각지를 통기타 하나로 방랑하며 삶의 희로애락을 노래했던 그들에게 블루스에 대한 작금의 인식은 난센스인 것이다. 채수영씨가 국내 유일의 블루스 클럽 ‘저스트 블루스’(Just Blues)를 운영하는 이유는 바로 두 가지다. 블루스에 생소한 이들에게 블루스의 참 맛을 알리자는 것. 또 하나는 블루스 연주인들에게 땀 흘리며 자신의 기량을 펼칠 수 있는 라이브 공간을 제공하는 동시에 감상자들의 심신을 음악으로 달래주고 싶어서다. 블루스 클럽 운영 10년째. 이태원 생활을 마감하고 지난 2003년 압구정동 지금의 위치에 자리를 틀었다. 그가 말하는 블루스 예찬론의 핵심은 그것이 지닌 한과 애환의 정서다. “3개의 코드로 단순하게 진행되는 탓에 일부는 모든 노래가 다 똑같다고도 하지만 일단 그 맛을 알면 헤어나질 못합니다. 직장에서 해고되고 집에 와보니 아내가 집을 나갔다 등등 우리 일상을 이루는 그 삶의 이야기가 중심이죠. 대부분은 '뚱뚱' 거리는 리듬과 테크닉에만 주목하지만, 블루스의 핵심은 바로 가사에 있습니다." 한을 품었다는 점에서 블루스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도 통한다. 그래서 지금의 냉대가 더욱 아쉽다. "블루스가 일반화되지 않은 이유라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은 음악인들의 책임이 크다고 봐야죠. 반짝 인기를 끌 수 있는 장르에만 매달리다보니 블루스의 그 깊은 맛을 제대로 전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는 주말이면 저스트 블루스 홀 중앙에 마련된 무대에 올라 직접 노래와 기타를 연주한다. 70년대 미8군에서 연주를 시작했으니 어느덧 연주경력 30년이 넘었다. 98년에는 솔로 앨범까지 발표했다. 홍보 부족으로 실패를 맛봤지만 그다지 쓰진 않다. 왜? 앨범의 성공보다는 무대에 올라 관객들과 호흡하며 라이브를 하는 것이야말로 음악인의 본업이자 기본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음악계는 요즘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원래 에릭 클랩튼이나 스티비 레이 본 등 대가들은 클럽에서 음악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즉, 라이브 무대에서 혼을 불사르다 픽업이 되면 앨범을 내고, 프로 뮤지션이 되었던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일단 정규 앨범 내고, 홍보 잘해서 인기를 끌면 대형 공연이나 어떻게 해볼까 합니다. 저요? 앨범 내서 스타가 되려고 했던 적 없습니다. 라이브 공연 무대를 제공했다는 것, 그것만큼은 우리 음악계 발전에 일익을 담당했다고 자부합니다."
음악인으로서 그는 많은 굴곡을 겪었다. 나이트클럽 백밴드 시절, 그는 자신을 "기계였다"고 회고한다. 80년대 초반 한반도에서 미 병력이 빠져나가면서 수많은 미8군 클럽들이 문을 닫았고, 무대를 그리워한 나머지 어쩔 수 없이 나이트클럽을 찾았던 것이다. "그 때는 정말 질식할 것 같았습니다. 미8군 때는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어요. 보수는 형편없었지만 자기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죠. 하지만 밤무대 연주는 자유란 게 없었습니다. 그저 빠른 곡 4개, 느린 곡 1개. 거기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바로 욕설이 쏟아집니다. 기계였던 셈이죠. 당시 실력 좋은 동료들이 음악을 상당수 그만뒀습니다. 한 친구는 부산 앞바다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을 정도니까요. 라이브 클럽의 부재, 이는 우리의 숨통을 쥐었습니다." 89년 그는 결국 홍콩행을 택했다. "내가 다시 기타를 잡으면 미친놈이다"는 각오로 1년간 회사원 생활을 했지만 어느 날 클럽에서 흘러나온 라이브 연주에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점주에게 부탁하여 몇 곡만 합주하겠다는 게 점점 늘어갔고, 그러는 동안 한 영국인 연주인에게 픽업되어 그룹에 들어가게 됐다. 본격적으로 블루스를 하게 된 건 바로 그 때였다. 많은 것이 부족했지만 동료들의 도움으로 그의 '블루스 필'은 날로 성장해갔고, 결국 직장도 그만뒀다. 기타리스트라는 본래 자리로 회귀한 것이다. 그가 보는 한국의 블루스 음악은 어떨까. 정통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신촌 블루스나 김목경에 대한 '칼날'을 기대했지만 대답은 예상 외였다. 그야말로 한국적인 블루스, 즉 흑인의 것을 모방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감정을 블루스에 투영시킨 대단한 성과라는 것이다. 그의 말을 따르자면 '한국 대중음악계의 한 획'을 그은 게 바로 신촌 블루스의 엄인호와 김목경이다. "일부는 제게서 그들에 대한 혹평을 기대하는 데 전혀 그 반대에요. 사실 우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흑인들의 블루스를 그대로 따라할 수 없고, 또 그래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블루스라는 자산을 바탕으로 결국 내야하는 건 우리의 소리죠." 우리 블루스 감상자들에게는 이렇게 전한다. "너무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에 매몰되었다고 할까요. 그저 대가라고 인정받는 소수를 기준삼아 그에 못 미친다 싶으면, 음악 못 한다고 싫증을 내버립니다. 그런데 기타에 잘 치고, 못 치고가 있겠습니까. 연주자들마다 특징이 있고, 장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를 개성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음악성을 인정해줘야죠." 20년간 음악생활을 해온 그이지만 그에게서 자만과 편견이란 찾아볼 수 없다. 블루스를 고집하는 이유도 다만 그것이 좋아서이지, 다른 음악보다 우월해서가 아니다. " 힘든 자들에게 위로를 주고, 또 즐거운 사람들에게는 즐거움을 더해 주는 것이 바로 음악입니다. 그런 점에서 음악은 결국 영혼이자 정신이죠." 다음달이면 그의 2집 앨범이 나온다. 이번에도 목적은 마찬가지다. 그저 블루스에 대한 일반의 이해를 넓혔으면 하는 바람 한 가지. 그의 음악을 듣고 싶은 이들은 압구정동에 위치한 '저스트 블루스'를 찾으면 된다. 그가 무대에 오르는 주말과 달리 평일에는 블루스에 막 입문한 '젊은 피'들의 공연이 펼쳐진다. |
|
|
원문출처 : http://cafe.daum.net/topnaturalhairs/6V4n/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