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노트

혼자쓰는 회색노트1

길을 묻는 길냥이에게_the캣 2005. 10. 12. 18:22

동숭동에서 너를 만났던걸 기억해냈다. 명동성당 입구의 모퉁이에 자리한 레코드점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P형도 생각이 났다. 며칠 전에 있었던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K씨도 떠올랐다. 어디로 갈까...

무작정 걸어나왔다. 호수가 얼고 있었다. 호수 밑바닥까지 바짝 얼어버리면 고기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몇해전 반쯤호수 수면위로 떠올라 동사해 있던 물고기들이 생각났다.

12월의 바람이 귓볼을 발갛게 달구고는 내 옷깃을 잡아끌었다. 얕은 산 하나를 넘어 거리로 나섰다. 길위엔 사람들이 많았다. 제각기 자신들의 희망에 전념해있는, 그리하여 어느만큼은 그 꿈을 이룬 사람들처럼 즐거워보였다. 그 무리들 속에 내가 비집고 들어갈 공간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그들은 그들만의 은밀하고도 굳은 결속을 다지며 거리를 밀어내고 있었다. 난 그것에 그리 마음쓰지 않기로 했다. 70년대 식의 희망, 그리고 80년대의 사랑법에서조차도 난 환영받지 못했으니까..

아주 작은 행복을 간절히 바랬던 기억은 있었다. 그때도 그 행복은 내 몫이 되어주지 않았었다. 오히려 내가 원하면 원할 수록, 그 간절함이 더해갈 수록 더욱 세차게 나를 밀어냈었다. 기쁨보다는 절망의 순간들이 더 깊고 선명하게 상처로 남아있던 시절들... 거부할 수록 더욱 억세게 나의 감수성을 옥죄어오던, 그리하여 필사의 저항은 거의 꿈꾸지도 못했던 그런 슬픈 기억들 때문에 이제 나는 아주 작은 소란에도 쉽게 무너져버리는 몹쓸 사내가 되어버렸다. 나는 여전히 <거기에 그들과 함께>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달갑지 않은 상념들을 밀쳐냈을 때 나는 어느새 전철역에 이르는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볼일을 마치고 길을 거슬러 오면서 서점에 들러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사고 레코드점에도 들렀다. 모짜르트의 <마술피리> 앞에서 잠시 시선을 두다가 사운드트랙을 집었다. 결국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시디를 샀다. 장혜진의 노래테입도 하나 곁들여 샀다. 1994년 어느 늦은밤이라는 노래가 참 좋다는 매장아가씨의 권유 때문이었다. 매장을 나서 때맞추어 매장서 흘러나오는 장혜진의 노래를 들으면서 집에 돌아왔다. 피곤했지만 이호창의 <꿈꾸는 자의 사랑법>을 다 읽었고 < A Love Idea >란 곡을 들으며 몸을 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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