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야기

응답하라 1988 _ 소년, 소녀를 만나다

길을 묻는 길냥이에게_the캣 2015. 11. 25.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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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스케이트를 잘타는 소년이 있었다.
멋부리기도 좋아해서 동대문시장가서 직접 옷을 골라 사입었던 소년.
공부는 어울려다니는 무리 중에서 제일 잘했다.

태권도를 좀 하는(?) 눈이 작은 소년과 마라톤을 잘했던(!) 인상 사나운
친구 둘이 소년의 절친이었다.
이들은 참 이상한게 사납고 거친 파도처럼 돌아다니다가도 소년과 있으면
길들여진 늑대처럼 온순했다.
하긴, 그래서 친구가 되었겠지.

이들에게는 생기발랄하면서도 여성스러운 여자사람친구 셋이 있었다.
한 여자애는 평범하지만 그 평범함으로 무리에 안정감을 존재였고
한 여자애는 얌전하면서도 지적인 이미지를 가졌으며
인도공주라 불리던 여자애는 까무잡잡한 피부가 매력적인 소녀였다.

이 여섯은 틈만 나면 같이 어울려 놀았는데
어느날 우연히 여섯 명 모두 혈액형이 같다는걸 알게되면서
더욱 우정이 돈독해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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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섯은 주말마다 <알프스>로 몰려가 어울렸다.
아.. <알프스>는 서울 시내에서 나름 논다고 하는 아이들이 몰려들었던,
둔촌동에 있었던 서울에서 가장 훌륭한 시설을 가진 최신의 롤러장 이름이다.

소년은 매주 주말이면 이곳에서 꽝꽝 울리는 음악을 들으며 변형시킨 나팔바지에
매듭이 휘날리는 하얀색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정신없이 달렸다.
앞으로, 뒤로, 때로는 오징어처럼 옆으로 흐느적거리면서 달리고 또 달렸다.
가끔씩 매우 빠른 음악이 나오면 아이들이 환호성지으면서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넘어지고 엎어지고 쓰러지고 덮치면서 트랙에 인간탑이 쌓이기도 했는데
작고 가녀린 소년은 아이들을 진정시키려는 롤러장 관리인들의 주먹질을 피하면서 가볍게 폴짝,
그들을 뛰어넘곤 했다.

한쪽에선 한 무리의 여자애들이 깔깔거리면서 일명 물레방아춤을 추었고
한쪽에선 남자애들이 말춤을 추며 낄낄거렸다.

어떤 날에는 같이 어울리던 여자애들을 통해 소년에게 간단한 쪽지가 전달되기도 했었다.
일종의 부킹인 셈이었는데
그럴때면 소년은 얌전한 인상과는 다르게 꽤 까다롭게 수락여부를 정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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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즐겁게 16살 겨울의 끝자락에 소년에게 드디어 사랑이 찾아왔다.
무리 중 평범함이 매력인 소녀를 통해 같이 어울렸던 얌전하면서도 지적인 소녀의 편지가 소년에게 전달되었던 것.
얌전하고 모범적인 인상이면서 어딘지 모르게 불량함이 느껴졌던 소년의 매력이
그녀에게 통했던 모양.
그렇게 소년은 소녀와 애틋한 감정을 나누기 시작했다.
집에 초대해서 공부도 같이 하고
야간 인문계고등학교에 다니던 소녀를 위해 매일밤 여고 교문앞에서 그녀를 기다려 주었다.
주말이면 롤러장 대신 같이 시립도서관에 갔고
그런 아들의 모습에 소년의 부모는 끙끙 속앓이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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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데, 소년에게 그녀는 첫사랑이었다.
그러나 그 관계는 10개월만에 어이없이 끝을 보고 말았다.
소녀의 쪽지를 전달해주었던 평범함이 매력인 또 한 소녀가 사단이었다.
소년의 다른 친구가 그녀의 남자친구였는데
우연히 소개팅에 나가 다른 남자와 어울린게 들통이 났던 것.
그녀의 남자친구가 소년에게 와서 상담을 했고
얌전하고 모범적이면서 어딘지 모르게 불량함이 느껴졌던 소년은
그녀와 그녀의 친구 인도공주에게 친구를 대신해 불같이 화를 냈다.
그녀들은 처음 보는 소년의 얼음장같은 모습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공포심을 느꼈고
결국 그녀들은 그날의 모든 일들을 소년의 첫사랑에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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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첫사랑 소녀는 두 페이지의 편지를 써서 소년에게 전달했다.
그 편지는 각자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서 만나자는 얘기로 끝을 맺고 있었다.

소년은 순간 멍해졌고
이내 정신을 차리면서 깊은 슬픔을 느꼈다.
소년은 한동안 정신을 놓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기어이 성적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고
소년은 그 성적표를 받아들고 절망감에 빠져 늑대처럼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그런 소년을 소년의 어미가 부둥켜 안고 달래주면서
그저 고등학교만 마쳐달라고 부탁하고 부탁하고 또 부탁하였다.

소년이 자신을 위해 흘렸던 최초의 눈물이었고

처음으로 자신을 사랑해야한다고 생각하게 만든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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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2년간 소년은 수도승처럼 살았다.
집, 학교, 자율학습, 독서실, 집, 학교, 자율학습, 독서실, 집, 학교, 자율학습, 독서실 ...
그리고 2년 후 소년은 원하는 대학에 갔다.

대학생이 된 소년은 참 해맑은 청년으로 살았고
늘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

어느날엔가,

수업을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소녀가 있었다.

자기 집 옥상에서 첫사랑이었던 그 소녀가
물끄러미 소년을 내려다 보고 있었던 것.
2년제 예술대에 진학했고 곧 오빠의 친구랑 결혼할 거라는 소문을 들었었는데...

소년은 그저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묵묵히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그렇게 첫사랑의 추억은 완결되고 말았다.

소리 소문도 없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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