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공간 위로 쿵 하고 내려놓는 책더미와 같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여기저기 먼지처럼 풀썩거렸다. 그들은 죽은 사람의 영혼처럼 소리없이 숨어있다가 갑자기 환생한듯 부산하게 움직이고 왁자지껄했다. 시큰둥하게 제모습을 갖추고 자리잡은 그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의자에서 잠시 엉덩이를 떼었다. 팀장이 씩씩거리면서 사무실로 들어와 그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이봐 김형석씨, 내가 전에 말했던 경쟁회사 분석 보고서 다 됐나?"
"그거, 지난주에 메일로 이미 보내드렸는데요?
"아, 그랬나? 내 정신좀 봐..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시 한번 보내줄래? 갑자기 사장님이 오늘 회의에서 왜 보고를 안하느냐고 역정을 내더라고. 나중에 따로 불러서 보고받겠다고 해놓구선 에효. 나이가 많아지니 점점 역정만 느시는거 같아"
"네, 팀장님..."
메일 창을 다시 여는 그의 머릿 속에 몇번씩이나 같은 일을 반복하게 하고, 생각나는대로 회의하고 결론은 없고, 비능률의 전형이면서 전혀 개선의 기미가 없는 이눔의 회사, 당장이라도 때려쳐야지 하는 마음이 스멀건하게 스며들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짜증나는건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업무 전화였다. 이 회사는 고용 계약을 마치 노예계약처럼 활용하는 식이었다. 정규직이건 계약직이건 예외가 없는, 회사 사람들 모두가 묵시적으로 수용할 수 밖에 없는 불문율 같은 거였다.
6개월 전 처음 입사했을 때 그는 이런 부당한 상황들을 아무렇지 않다는듯이 받아들이는 회사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치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사람들처럼 보고 들은 것에 대해 말하는 법이 없었고 가끔씩은 기계처럼 움직였다. 언젠가 앞자리에 마주 앉아 일하는 정대리에게 이런 얘길 했더니 그는 이런게 처세라면서 그에게도 괜한 불평불만 갖지말고 윗사람들의 눈치를 잘 보라고 말해주었었다. 가만 지켜보면 이 사람들은 꼭 필요한 일만 했다. 가령, 사장이 시키는 그런 일들 말이다. 회사를 발전시키기 위해 개선사항 따위를 고민하고 발표하는 일은 '괜한 불평불만'에 속하는 일로 정년이 보장되는 공공기업에서는 절대 하면 안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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