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 왜 저 모양이지? 우리땐 안그랬는데.."
내가 어렸을 때 자주 듣던 소리를 이젠 내가 하는 처지가 됐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사람에 따라 여러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분명한 사실은 '나도 이젠 나이가 들었다'는 것일 터.
비슷한 연배의 누군가는 신문 칼럼에서 그런 말을 하는 자신에 대해 오히려 아이의 눈높이를 맞춰주지 못하는 것이라고, 좀더 많이 아이의 생각과 의견에 귀기울이고 존중해주어야겠다고 썼었지. 똑같이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한편 공감이 가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은근 반발심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요즘 헬리콥터 부모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처음엔 십년 전쯤 일본에서 유행했던 사회현상이 드디어 우리 사회에도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고 선진국 사회가 될 수록 있을 수 있는 하나의 현상이기도 하다는 정도로만 이해했었다. 그런데 이젠 그 정도가 점점 지나치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건 굳이 신문기사 때문이 아니라 매일 대학생들을 상대해야하는 직업인으로서의 내가 실제로 겪고 있는 경험들 때문일 것이다.
관련기사 : http://media.paran.com/sdiscuss/newsview2.php?dirnews=3380656&year=2009&key=hit&link=newshitlist.php
위의 기사에서 나오는 일들은 솔직히 기사거리라고 할 수도 없는, 아주 흔한 일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실, 전과제도 등 학사에 관해 부모가 관심을 가지고 전화로 상담해오는 것 정도는 가끔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다. 매학기 종료 후 자식의 성적을 전화로 묻는 것도 어쩌면 부모로서 당연한 관심일 수도 있겠다. 부모의 전화를 받고 놀랍고 황당했다는 교수의 발언은 사실 내가 겪은 것에 비하면 너무 우습다는 생각이 들 정도.
자녀를 옆에 앉혀두고 수강신청에 대해 전화로 하나하나 묻고 있는 엄마란 존재에 대해서는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이가 3학년인데 엄마가 아이를 옆에 앉혀두고 전화로 묻고 있다면 그 아이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지.. 귀머거리도 아니고 벙어리도 아닐테고 입시를 치르고 대학에 들어왔으니 무뇌아는 더더욱 아닐테고... 더욱 기가막힌건 지금까지 2년내내 그래왔다는 거......
학교생활에 대해 직접 나서서 챙기는 부모는 정말 아이를 사랑해서 그러는 것일까? 어려서부터유치원 뿐 아니라 학원 스케줄까지 일일이 챙기고 다니던 습관이 대학생이 된 이후까지 계속되다보니 아이는 점점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형같은 존재가 되고 있는데 부모는 왜 그걸 모를까.. 그것이 과연 사랑일까?
그래서인지 나는 요즘의 많은 부모들처럼 아이들에게 자상한 사람이 되어주는 것에 대해 망설이는 일이 많아졌다. 오늘도 그랬다. 전과를 신청하려면 3학년 진급 직전에 전과신청공고를 보고 스스로 챙겨서 지원했어야 했다. 전과에 관심이 많았다면 처음부터 요람에 나와있는 학칙이나 홈페이지상의 학사정보를 미리 살펴보았어야 하는것 아닌가? 아이는 당연히 했어야할 그런 노력들 대신에 전과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주변 사람들을 통해 손쉽게 정보를 얻으려했고 그 결과 잘못된 정보를 전달받아서 전과신청 기회를 놓쳐버렸다. 그런데 그 모든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들은 후에 아이의 첫마디는 이랬다.
"이건 너무 불합리한 것 아닙니까?"
"......!"
난 대뜸 이렇게 말하는아이에 대해서 솔직히 잘 이해하지를 못하겠다. 왜 이것이 불합리하다는 것인지에 대한 의견은 없이 무조건 불합리하다고 우기는 아이를 보면서 참 서글프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생각같아선 그냥 나가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 그냥 참고 말았다. 불합리하다는 단어의 개념 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국어를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불합리하다는 말은 이치나 도리에 맞지 않다는 의미이고 그것에 따르면 전과에 대한 학칙이나 공정한 절차, 규칙, 기준, 공고 등의 행위가 없이 전과생을 일방적으로 선발한 경우에 항의의 의미로 쓸 수 있는 단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녀석은 그 모든 절차와 규칙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설명을 들었고 스스로 그것에 대한 정보취득과 전과공고 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잘못은 무조건 덮어둔 채 전과자격과 선발시기 등을 정한 학칙과 모든 절차를 무조건 불합리하다고 부정해버리고 있는 거였다. 그래도 이렇게 직접 찾아와 설명듣고 나름대로의 의견을 피력하는 건 차라리 학생답다고 하겠다. 뒤늦게 전화로 물어보고 학칙에 의거 안된다고 하면 무조건 성질을 내거나 일방적으로 학교 나쁘다는 식으로 내뱉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경우보다는 훨씬 인간적이지 않은가?
요즘 일과 관련해서 몇몇 사람들과 부딪친 경험이 몇번 있었다. 사회가 복잡해질 수록 대학의 일이란 것도 점점 복잡해지고 세분화되고 새로 생겨나는 일들도 많아지다보니 일로 인해 부서간의 벽이 더 높아지는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일이나 현상에 대해 조금만 생각을 해보고 말하거나 일을 처리한다면해결 안될 일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예전에 사내교육장에서 만났던 한 할아버지 강사의 농담이 계속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교육생에게 질문을 던진 후 대답을 못하면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과장된 몸짓을 보이며 하이톤으로 이렇게 말하곤 했었지.
"으이그, 생각좀 하고 살어 생각!"
저렇게 저리 말할 때마다 낄낄거리고 웃곤 했는데 일년이 지난 지금 다른 교육내용은 거의 생각나는게 없고 유독 이 말만이 내머릿 속을맴돌고 있다. 그 할아버지, 인생의 후배들인 우리에게 정말 꼭 필요한 말씀을주셨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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