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노트

혼자쓰는 회색노트6

길을 묻는 길냥이에게_the캣 2005. 10. 12. 18:26

하나의 '의무'를 다하고 나니, 또다른 무언가가 걸렸다.

가끔씩 안좋은 예감처럼 가슴을 싸늘하게 만드는 돌맹이 같은게 만져졌다.

이럴때면 통상 나는 음악을 듣곤 했는데

오늘은 워크맨마저 집 책상위에 놓고 온 터였다.

이렇게 음악마저 가까이 할 수 없으면 나는 음악 대신으로 소설책을 사곤 했다.

그래서 만나게 된 것이 신경숙의 <깊은 숨을 쉴 때마다>였다.

신경숙의 문장은 사람의 숨을 고르게 갈라놓는 듯해서 좋았다.

나는 그녀의 소설을 서너 페이지 읽을 때마다제목에서처럼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몇번 숨을 고르며 책을 읽다가 문득 내다본 창문 밖....

거기에그女가 서 있었다.

갑작스러웠다.

그女의 갑작스런 출현으로 인해 결국

평온하던 내 마음 속에서 온갖 감정들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잠시 난감해졌다.

실재하지 않는 그女의 그림자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불현듯

사진이 있었음을 생각해냈다.

그 순간부터 내 마음이 몹시 부산해졌다.

아.....

그女는 제목이 없는 노트의 맨 뒷장에 숨어있었다.

그女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 그런 그녀의 무심함이 얼마나 날 미치게 했었던가, 후

사진이 들어있던 그 노트엔 일기가 낙서처럼 적혀있었다.

그女에게 사랑한다 고백하기 전후의,

짧았던,

그러나 내 생애중 가장 뜨겁고 강렬했었던

1994년 가을날의 내 감정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나는 뜨겁게 살아숨쉬는 젊은 영혼으로 그 노트에서 존재하고 있었다.

울컥....

그 기록들은

매우 아름다우면서도 슬프고 고통스럽게

내 가슴을 찌르고 있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한채로 나는 그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잊고있었던 그女의 사진을 다시 꺼내어 보던 날....

1995.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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