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캣생각

잡생각

길을 묻는 길냥이에게_the캣 2020. 9. 19. 14:57

직장생활을 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조직 속에서 나라는 사람의 가치는?

개인과 조직이 모두 행복할 수 있기는 한걸까?

 

직장 생활을 20년 넘게 했다.

지랄 맞은 성격 탓에 아직 내 면전에서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은 별로 못봤지만

어쩔 수 없는 '갈참'인건 분명한 사실.

 

긴 직장생활이지만 대체로 견딜만 했던 것 같긴 하다.

여전히 다니고 있는걸 보니 하하.

 

그렇다고 난 성공한 직장인은 아니다.

책임감, 그리고 내가 맡은 일이 잘되는 것에 더 집중하는 성향에

워낙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다.

그저 내가 일만 잘하면 되지 라는 생각이 강했고

고집과 불같은 성격, 직설 화법 등

일반 회사같았으면 실력과 별개로 벌써 쫓겨났을 사람,

그게 나였다.

아무리 훌륭한 성과를 내도 제대로 인정도 못받는 사람.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보다도

눈에 보이지 않는 미움과 배척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사람.

그게 나였다.

알고보면 마음이 따뜻한 사람인데도

그걸 드러내길 극도로 꺼려했고

그저 한 사무실에 일하는 팀원들에게만 한없이 너그러운 사람,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부당한 업무처리에 대해 결코 참지 않고 한바탕

쓴소리를 쏟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사람.

그럼에도 여전히 내가 출근하는거 보니 새삼 월급주는 이 학교가 진심 고맙다.

 

오래 다니다보니 좀 달라진 것도 있긴 하다.

일 자체보다 관련된 업무 전체를 보려하고

일의 내용보다 방향성을 먼저 체크하는 건 분명 실무자일때와 달라진 부분이었다.

또한, 참을성이 조금은 생긴 것 같다.

대충 포기해야 할 때 포기할 줄도 알게된 것 같다.

상대의 작은 실수쯤은 너그러이 용서하고 넘어가주는 경우도 생겼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나'보다는 '우리'를, 팀보다는 회사를 먼저 생각하고,

능력보다 태도가 중요함을 강조하게 됐다.

그래서 일을 실수했을 땐 별 말없이 넘어가지만

그 실수를 인정하는 태도가 바르지 않으면 따끔하게 일침을 놓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존중', '배려' 와 같은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는 이런 내가 '아재'같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만큼 직장생활을 오래한 사람이라면

많이들 공감할 거라 믿는다.

 

며칠 전, 내게 보고하던 부하직원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걸 보게 되었다. 

공지된 일정에 자료를 제출하는데

중간부서들의 실무진들에게서 하루전에 보내주지 않았다는 책망을 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말을 듣고 최종 취합부서의 실무자가 직접 연락해서 지적질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최종 전화한 실무자에게 전화를 걸어 호통을 쳤다.

속된 말로 한 10분 가까이 생난리를 치고 '서로 배려하면서 일좀 하자'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내가 '자발적인 은따'같은 사람이라면 내게 보고하던 부하직원은 사실 직장에서 '노골적인 왕따'다.

특채로 입사한 것도 그렇고 박사취득자로 특정업무에서 전문가 행세하던 것도 다른 사람들에겐 꼴불견.

나이도 많은데다

다시 본인이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해당업무로 복귀가 가능하다고 믿어

행정업무를 열심히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는 직원.

당연히 좋은 평을 받지는 못할 수도 있긴 한데

그렇다고 해도 자기보다 직위가 낮은 것도 아니고 나이가 적은 것도 아니고

공식적으로 제시된 기한을 넘긴것도 아니고

게다가 본인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 아님에도 돌아가면서 그런식으로 지적질을 한다는건

소위 말하는 '왕따'에다 '부서갑질'로 팀을 맡고 있는 내게 지적질을 하는 것과 같다고 느껴서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는 사안이었다.

 

 이날, 그 부하직원은 퇴근할 때까지 내내 풀이 죽어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하는 전화통화를 들으면서 조금은 덜 속상하지 않았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정말)

 

이번 일을 통해 새삼, 조직생활(의 폐해)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봤다.

성과보다는 평판이, 노력파보다는 기회주의자가 판치는 회사.

정말 망해가는 조직의 모든 폐해를 모두 보여주고 있는 회사의 현 상황이 씁쓸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나도 그렇게 살 수는 없지 않는가 싶다.

내가 직장생활을 하는 가장 큰 목적은

'성공'이 아니고 '보람'이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조직에서 '성공'이 최우선 가치가 될 수는 없다는 내 신념은

20년 넘어서도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