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1.
여동생의 안부를 묻는 미국 사는 이종누이의 갑작스런 보이스톡 통화.
- OO가 톡으로 갑자기 미국 가도 되냐고 묻길래 와도 된다고 하고 전화를 하니 받지 않더라.
무슨 일 있니??
느낌이 안좋아 서둘러 통화를 끊고 아내에게 전화를 넣어보라고 했더니
밤 열시면 주무실텐데 내일 하자고 해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지르고 말았다.
-전화 좀 해보라면 하지 왜 자꾸 토를 달어? 걸어보라면 좀 바로바로 걸어봐!!
여동생과 전화 통화가 되지 않아 바로 어머니와 통화를 했는데
잠시 바람 쐬러 나갔다는 말.
아니, 이 추운 밤에 애가 어딜 나가냐고, 별일 없는 거냐고 다그치듯 물었더니
그제서야 애가 요즘 좀 안좋다고, 오늘 원래 진료받는 날 아닌데
낮에 여동생 데리고 병원에 다녀왔다면서 의사가 상태가 좀 안좋아지고 있다고 했다는 얘기에
결국 어머니에게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왜 나한테 얘기를 안하냐고, 전에도 그렇게 얘길했는데 왜 바로바로 얘길 안해주냐고요!!
다시 여동생에게 전화, 톡, 그리고 계속된 통화연결음 ...
어쩔 수 없이 어머니집으로 가기 위해 급히 패딩을 챙겨입고 나서면서
문을 쾅, 닫으며 악에 받쳐 내뱉은 악다구니...
-나한테 다들 왜 이래? 왜 날 더 힘들게만 만들어 다들? 내가 죽어버려야 끝이 나는거야??!
차를 몰고 길을 나서는데 다시 걸려온 아내의 전화.
여동생이 들어왔다고 ...
그래서 무조건 내일 퇴근길에 내가 여동생 데리러 갈테니 짐 챙기라고 일러두고
다시 주차장으로 턴.
아내는 여동생 사랑이 지극한 오빠같다고 하는데
그녀는 정말 모르는걸까, 아니면 그냥 하는 말일까.
또다시 후회를 반복하고 싶지 않은 내 심정을...
가끔씩 내 가족에게 지나치게 예의를 따지는 듯한 아내에게 느껴지는 거리감,
입 꾹 닫고 아버지의 어떤 말도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는 남같은 딸,
늘 내 걱정한다면서 안좋은 일들을 숨기기에만 급급한 부모님들에게 느껴지는 절망감.
직장에서의 스트레스에 이런 심리적 부담감이 더해져서 자존감까지 바닥을 치는 그런 날.
주변 사람들의 빗물받이같고 가족들을 죽을 때까지 걱정하고 보살피며 살아야 하는
인정하기 싫은 그런 팔자에 서러움이 폭발하는 이런 날, 나는
내 삶이 참 별로였다는 생각이 든다.
2023.12.22.
퇴근 시간 무렵,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을 받지 않다가, 받았다.
- 오빠랑 우리 집에 가자. 준비하고 있어라.
- 안갈래. 엄마랑 가. 나 약속 있어.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있어.
- 무슨 소리야. 오빠가 어제 말했잖아. 쓸데없는 소리 말고 준비하고 있어.
- 나 지금 밖이야. 나 안갈거야.
뚝.
다시 걸었다.
받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결국 또 역정을 냈다.
- 왜 다들 날 힘들게 해요. 나 좀 도와주세요 좀!
80살 다된 노인네가 어떻게 제대로 판단을 할까 싶으면서도
매번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어머니의 판단들, 너무 괴로웠다.
아내에게 도움을 요청해보려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퇴근 후 바로 어머니집으로 향했다.
여전히 동생은 부재중.
이 추운 날, 자꾸 밖으로 나가서 들어오지 않는 동생에게
불안한 생각만 들었다.
수 차례, 아니 수십 차례 계속 전화를 걸었다.
드디어 멘트가 들렸다.
'전화기가 꺼져 있어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어머니 집 밖에 머물면서 동생을 기다리다가
한 시간 좀 넘어서 걸려온 아내의 전화를 받지않고
부모님들에게 인사도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주문한 침대가 들어올 딸 아이 방을 정리중이었다.
아무 말없이 안방으로 들어와
겉 옷을 벗고 양말도 벗고 세수를 했다.
그리고나서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두시간 정도 눈에 안대를 하고 뉴스를 틀어놓고 어두운 방에서
가만히 누워있었다.
8시 50분쯤 내 핸드폰이 울렸었고
어머니 전화라는걸 확인하고
받지 않았다.
좀 더 누워있다가 9시 좀 넘어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아내는 알바를 마치고 들어온 딸아이와 침대 정리하느라 정신없었고
아들놈은 힐끗힐끗 쳐다보며 지 방으로 들어갔다.
한 지붕 두가족 같았다.
나의 수십 통 전화를 거절했던 여동생과
동생 상태가 안좋으면 바로바로 연락달라는 내 부탁을 매번
다른 마음으로 들어주지 않는 어머니,
내가 느끼는 절망감보다 당장 해야할 일들에 집중하는
남같은 가족들을 생각할 수록.
내가 타인처럼 느껴졌다.
동생이 집에 들어왔다고 어머니가 전화했었다는 아내의 얘기에
대꾸없이 늦은 저녁을 먹고 서재방에 들어와 PC를 켜고
연거푸 커피를 마시면서 평소처럼 이것저것 보고 있었지만
칙칙한 배경의 동유럽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이 기분,
진짜 별로였다.
2023.12.23.
주말 근무를 마치고
어디를 갈까, 생각하다가 그냥 집으로.
여전히 기분이 별로여서
딱히 가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집으로...
집에 와서 말없이 옷갈아입고
서재방으로 들어와 습관처럼 PC를 켰다.
한참을 이것 저것 보다가 핸드폰을 집었더니
많은 대화톡 알림창들이 떠있다.
내용들을 확인하다가
불같이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천성인지, 아니면 내가 단련이 된건지 모르겠는데
이 한 순간만 잘 참으면 누구보다 차가워지는 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장으로 마무리짓고
자기 잘못인줄 알고 주눅이든 톡을 보내온 부하에게 한마디 했다,
-주눅들지 마. 니가 잘못한거 아냐.
사실, 오늘은 아들넘의 생일.
싸한 집안 분위기에 눈치보기 바쁜 아들넘이 안쓰럽긴 했지만
이런 일까지 있고보니 내 기분은 거의 다 침몰한 배처럼 가라앉기만 하고 ..
결국, 아들넘 생일 케익 자르는 것도 건너뛰고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다가 일어나 식탁에 합류했다.
그리고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문제 하나를 내밀었다.
만원짜리 지폐와 함께.
그 옛날 장학퀴즈처럼 열띤 현장으로 변한 생일상 자리.
밤에 자려고 안방으로 향하는 내 등 뒤로 아내가 불쑥 한마디 던진다.
- 어머니랑 통화했는데 아가씨 너무 걱정말래. 오늘은 계모임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안가겠다고 하니까 아가씨가 대신 가서 맛있게 먹고 왔데.
내일은 친구랑 영화보러 간다고 했고 모레도 약속있다고 했데.
어젠 정말 극한의 감정까지 내몰렸었는데
아내의 말이 나름 진통제 역할은 된 것 같았다.
정신이 불안한 동생이 언제, 어떻게 또다시 방황하게 될지 모르니
아내가 나 대신 매일 전화라도 해줬으면 싶었지만
그 말은 결국 못했다.
내가 불편한 사람이 된건 아내처럼 긍정적이지 못해서일지도...
더이상 남들로 인해 내가 행복하지 못하게되는게 너무 싫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행복해지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 이렇게 계속 파도만 보니까 멀미난다
- 뒤돌아
- 와 ...
- 나중에도 사는게 답답하면 뒤를 봐, 뒤를
이렇게 등만 돌리면 다른 세상이 있잖아
2023.12.27.
응급실을 나선건 새벽 1시 35분 경.
저녁 7시 반쯤 집에서 연락을 받고 나섰으니
거의 6시간동안 응급실에 앉아 있었던 셈.
응급실 정신과 담당의사에게 간단히 설명을 듣고
결국 전담 의사가 출근하면 상담 후 입원 여부를 결정하기로 해서
신경안정제를 두번이나 투여해서 거의 반쯤 늘어져 있는 동생을
그 시간에 집으로 데리고 왔다.
내가 오후 출근인게 다행이라면 다행.
동생을 푹 재우고 나서 점심까지 먹이고 내 차로 다시 병원으로...
어머니는 내가 충분히 전화로 설명을 드렸음에도
아침부터 택시타고 병원으로 나와서 내내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아버지도 전화를 받지 않고 멋대로 이동하시고...
화나고 정신없고 당황스러운 상황 속에서 결국
병원에서 두 분을 겨우 찾았다.
그렇게 동행한 아내에게 뒷일을 맡기고
혼자서 사무실로 걸어오는데
한순간 하늘이 노랗게 보이더라.
동생은 결국 폐쇄병동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