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아들 녀석이 뜬금없이 헌책방에 가고 싶다고 했다.
알라딘 말고 헌책방을 가고 싶다면 결국 거기로 가야겠다 싶었다.
청계천 헌책방거리.
9시부터 서둘러 준비하고 10시쯤 아침 식사도 거르고 출발,
11시 경 헌책방거리 입구에 도착.
오랫만에 보는 청계천도 좋았지만
건물 위 평화시장이라는 저 글자가 특히 더 반갑더라,
어렸을 적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기분이었다.
내가 중학생 때 아버지와 함께 찾았던 헌책방 거리.
온라인 서점 등의 영향으로 이미 그 수가 많이 줄어있었고
서점이 있었던 자리는 모자 등 다른 물품을 파는 곳으로 변한 지가 오래였다.
예상은 했었지만 막상 마주한 초라한 거리 모습에 아쉬움이 가득 ...
아들 녀석이 알라딘이 아닌 이 곳을 오고자 했던 이유는 바로
저 녹색 책 세 권 때문이었다.
이미 다 읽은 내용이지만
나온지 오래된 전집으로 갖고 싶었다고 한다.
서점 주인은 그런 아들이 대견하기도 하고 또
워낙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런 책을 찾는다면서
매우 친절하게 친아들 대하듯 안내해주셨다.
그렇게 해서 사 준 저 세 권의 책값은 2만원.
아내가 너무 비싸다 하니 주인장이
원래는 3만원 받아야 하는데 2만원에 주는 거라 하고
나는 책값은 깎는게 아니야 라면서 그냥 내 카드로 결제해주었다.
내가 중학생 때 이곳에 와서 샀던 책은 쌍무지개 뜨는 언덕, 고교얄개 같은 소설이었는데
아무래도 아들 녀석의 취향은 애비보다 훨씬 고급스러운 것 같아서 뿌듯.
이왕 나온 김에 아들 녀석에게 대학천 책방거리도 보여주고 싶어 찾아갔는데
헐,
거의 망한 수준이어서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휴학생 때 출판사에 있으면서 책배달도 하고 어음수금도 했던 그 활발했던 책 도매상거리가
거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변해서 몇번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하긴, 30년도 더 된 추억이니 많이 변한게 당연할테고
온라인 서점의 영향으로 책도매상 개념도 사라진지 오래니 이렇게 변하는게 당연하겠지만,
서글픈 마음이 드는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한 때의 반짝였던 추억들이 낡은 사진처럼 변해버린 것 같았다.
동대문 시장은 내가 사춘기 시절 직접 옷을 사입던 곳이기도 했고
연애시절에 한번 종로에서부터 아내랑 걸었던 거리이기도 했다.
오랫 만에 이런저런 옛 추억들을 생각하면서 평화시장을 둘러보며
내 옷 하나, 아들 옷 하나, 딸아이 옷 하나, 아내 것은 두 장을 샀고
시장 골목 안 식당에서 늦은 점심도 했다.
많이 더웠지만 풍물시장까지 천천히 걸었고
신당역에서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와 아들, 나
모두가 만족하고 행복했던 하루를 보낼 수 있었음에
감사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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