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에게 영화같이 믿기 힘들 일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그 영화같은 일이 벼락부자가 되는 거냐구?
예쁘거나 멋진 이성을 만나 꿈같이 사는 일이냐구?
애인 앞에서 근사하게 깡패들을 물리치는 일이냐구?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럴 수만 있다면 더이상 바랄게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영화같은 일이란게 모두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영화에는 멋진 남자, 예쁜 여자, 부자들이 많이 나오지만
화면 전체가 핏빛으로 물드는 일도 빈번하지.
그리고 정말 유감스럽게도 실제 인생은 핏빛 스크린에 가깝다.
아주 피처럼 붉지는 않더라도 잿빛 콘크리트 바닥길이 비춰지는 화면처럼
단조롭고 지루한 경우가 훨씬 많지.
세상 일이란게 그런거 같다.
곧 닥쳐올 불행을 예감하지 못하고
늘 행복해지는 꿈만 바라보면서 사는게 인생이라는 거지.
공포영화 속의 끔찍한 사건, 사고들이 언제라도 당신의 일이 될 수 있다는 거지.
나라는 인간도 참 많이 우매해서
늘 앞만 보면서 로맨틱한 인생을 좇아다녔다지.
적어도 그 일이 있기까지는...
그가, 내가 잘 아는 그 사람이 그렇게 세상과 이별할 줄은 정말 상상할 수도 없었다.
총으로 목을 쏘다니...
그것도 이역만리 타국에서 그렇게 목숨을 버리다니...
급하게 외교부에서 여권을 발급받아 그곳으로 날아갈 때에도,
현지 영사와 경찰서장을 직접 대면하여 사건에 대해 브리핑을 받을 때에도,
타국의 승려들이 조문을 외우고,
결국 프랑켄슈타인처럼 온통 바느질이 되어있는 그의 얼굴을 붙잡고
흐느낄 때에도
굵은 뼛조각 몇개로 남은 그의 몸을 안고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면서까지도
나는 온통 꿈을 꾸는 듯 정신을 추스릴 수가 없었다지.
어머니는 내가 그의 시신을 수습하러 가있는 동안
매일같이 곡을 하셨다고 해.
남은 가족들이 매일매일 슬픔에 잠겨 있었다지 .
그러는 동안 나는 꿈꾸는 듯이 몽롱한 날들을 보냈지.
잠도 잘 잤고
거의 울지도 않았고,
그가 누워있던 태국 경찰병원 앞에서는 더위에 지친 승려들과 함께
차가운 쥬스를 나눠마시기도 하였다지.
그의 차가운 몸을 직접 만져보기 전까지는 정말 그랬었어.
아버지는 참으로 어린애같은 분이셨지.
그것이 다행인 것이,
그 냉엄한 현실 앞에서도 새로운 풍물에 금방 젖어드셨고
슬픔에 젖어있다가도 가벼운 농담에 어린애처럼 히죽히죽 웃으시기까지 하셨지.
참 다행인게지.
일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혼자서 소리죽여 우시는 어머니나
방안에 숨어서 우는 여동생보다는 훨씬 편안하시지.
그러니 나에게는 그나마 참 다행인게지.
남아있는 가족들이 죄인은 아닐터.
가당치도 않은 얘기지.
그런데도 우리는 장례도 못치르고
아무도 모르게, 봉분도 없이 차가운 땅 속에 그의 유골을 묻고 돌아서야 했지.
그의 인생이 불쌍해서 절에 가서 49제를 올려줬고
그때 나는 두번째로 뜨거운 눈물을 흘렸더랬지.
영화가 아니라 내게 닥친 현실이란걸 인정해야 했던거야.
가슴이 통째로 뜯겨져 나가는 것 같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