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노트 60

회색노트-그리움의 기록

라는 이름은 일곱권짜리소설 의 1부만을 뽑아서 만든 책자 이름입니다. 나는 그녀를 한 여자를 떠나보낸것을 계기로 만났으며, 이후로 노트 한 권을 돌려가며 편지와 일기글들을 서로에게 회색노트란 이름으로 남겨두었던 것입니다. 그녀와의 가슴아프고 아름다웠던 한 때의 기억들을 더듬더듬 이 노트를 통해 찾아가보는 여행을 떠나기 위해 당시의 글들을 꺼내어 이곳에 옮겨봅니다. 아름다운 글들을 내게 준 그녀에게 감사하며, 또한 그것을 가슴에 묻어두지 못하고 세상에 꺼내놓게 된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며... 2004.2.16

회색노트 2005.10.12

혼자쓰는 회색노트7

1.힘들게 잠을 이루고 오전 10시가 다 되어서야 끙, 하고 눈을 떴다.방안은 안경을 벗어버린 내 시계(示界)에서는 고여있는 웅덩이물 속처럼 뿌옇게 보였다.곧이어, 전날보다는 많지 않은, 그러나 여전히 눈부신 햇살들이 창틈새로 쏟아져 들어왔다.방안이 온통 환하고 따스한 빛으로 가득했다.그 빛들은 너무나 미세했고 고왔으며 가벼웠다.수백초동안 나는 그대로 누워서 눈만 뜬채로 있었다.밤사이 불면을 쫓느라 기력을 소진해서였을까...요 며칠간 나는 아침마다 눈뜨는 일이 힘이 들었다.오늘 아침에도 그러했다.어떤 알수없는 무력감이 내 어깨 양쪽을 무지막지하게 짓누른다거나 잠이 덜깬 내 영혼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느낌으로 내내 괴로웠다.비가 내리고 있었다.어머니는 아침부터 웬 비람, 하시며 싫은 내색을 하였지만나는 왠..

회색노트 2005.10.12

혼자쓰는 회색노트6

하나의 '의무'를 다하고 나니, 또다른 무언가가 걸렸다.가끔씩 안좋은 예감처럼 가슴을 싸늘하게 만드는 돌맹이 같은게 만져졌다.이럴때면 통상 나는 음악을 듣곤 했는데오늘은 워크맨마저 집 책상위에 놓고 온 터였다.이렇게 음악마저 가까이 할 수 없으면 나는 음악 대신으로 소설책을 사곤 했다.그래서 만나게 된 것이 신경숙의 였다.신경숙의 문장은 사람의 숨을 고르게 갈라놓는 듯해서 좋았다.나는 그녀의 소설을 서너 페이지 읽을 때마다제목에서처럼 깊은 숨을 내쉬었다.그렇게 몇번 숨을 고르며 책을 읽다가 문득 내다본 창문 밖....거기에그女가 서 있었다.갑작스러웠다. 그女의 갑작스런 출현으로 인해 결국평온하던 내 마음 속에서 온갖 감정들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잠시 난감해졌다.실재하지 않는 그女의 그림자를 멍하니 바라..

회색노트 2005.10.12

혼자쓰는 회색노트5

모처럼 맑은 하늘을 보았다.봄다운,정겨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면서학교에 왔다.- 기분이 좋다이렇게 집을 나와 연구실에 앉아 있으려니내가 꼭 인생을 연구하는 학자같다.Bach의 무반주 첼로 협주곡을 들으면서,그女가 언제 올까, 남들 눈치못채게 약간의 떨림을 느끼며 앉아서 나는'참을 수 없는 삶의 무게' 대신에'참을 수 있는 존재의 가벼움'을 즐기고 있다.참으로 마음 행복해지는 봄날에...1995.3.28

회색노트 2005.10.12

혼자쓰는 회색노트3

"논리적인 말들은 알게 모르게 사람의 감성을 불편하게 한다"나와 친해도 나에 대해선 잘 알지못하는 한 사람이 내게 말했다."넌 너무 논리적이야""그래, 네 말이 맞을수도... 하지만.."하지만....그는 내게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고 말하려는 것일게다.그는 내게 그러면서도 동의하지않는 이유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줄 수 없다고 한다.그 자신 내부의나에 대한 어떤 거부감 같은것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일게다.난, 그런 그의 애매함이 늘 불편하다.모든 것이, 이 세계가, 모든 존재가 분명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있는건 아니지만,아무리 그렇다해도 나에 대한 그의 입장은 그스스로의 모순됨을 반영할 뿐이다.사실 내가 그에 대해서불편했던건 그가 자신의 그 '혼란됨'을 잘 알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회색노트 2005.10.12

혼자쓰는 회색노트4

이틀 째 부슬비가 내리고 있다.하늘이 시름시름 앓고 있다.잔뜩 흐려있는 모양새가 요즘의 내마음 같다.한없이 몸이 아래로 쳐박히는 듯함.덕분에 요즘 나의 기상시간은 오전 11시가 되었다.덕분에 하루하루가 매우 빠르게 흘러갔다.의 윤이금처럼 방황하고 싶어지는 오후 한 때.이금이 숨어있던 주변에는비가 유난히 자주 내렸었고,방 밖 한쪽으로는오동나무가 있었다.내가 이금을 만났던 그날도 비가 왔었고 다만 오동나무가 없었을 뿐이었다.오늘 다시 윤이금이 보고싶어졌다.비가 오면 사람이 그립다던 후배가 생각났지만,그녀에게 전화를 거는 일은 하지 않았다.내가 몹시 사랑하는 C도 생각났지만,우리의 관계는 여전히 투명하지 못한 탓에 만나기가 망설여졌다.이런 내 자신이 너무나 무기력하게 느껴져서,그냥 내 방에 앉아 있기로 했다...

회색노트 2005.10.12

혼자쓰는 회색노트2

슈베르트는 24세때인 1824년의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매일밤 잠자리에 들때 또다시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란다.그리고 아침이 되면전날의 슬픔만이 나에게 엄습하여 온다.이렇게 환희도 친근감도 없는 나날이 지나간다.나의 작품은 음악에의 나의 이해와 슬픔을 표현한 것이다.슬픔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세계를 가장 즐겁게 하리라고 생각된다.슬픔은이해를 돋게하고정신을 강하게 한다...."슬픔은 이해를 돋게하고 정신을 강하게 한다"참으로 가슴을 아프게 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여전히 투명하지 못한 나의 하루와도 바꿀 수 없는 말오늘은 나에게 이런 말을 주고 싶다- 맑.게.살.자.1995.3.16

회색노트 2005.10.12

혼자쓰는 회색노트1

동숭동에서 너를 만났던걸 기억해냈다. 명동성당 입구의 모퉁이에 자리한 레코드점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P형도 생각이 났다. 며칠 전에 있었던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K씨도 떠올랐다. 어디로 갈까...무작정 걸어나왔다. 호수가 얼고 있었다. 호수 밑바닥까지 바짝 얼어버리면 고기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몇해전 반쯤호수 수면위로 떠올라 동사해 있던 물고기들이 생각났다. 12월의 바람이 귓볼을 발갛게 달구고는 내 옷깃을 잡아끌었다. 얕은 산 하나를 넘어 거리로 나섰다. 길위엔 사람들이 많았다. 제각기 자신들의 희망에 전념해있는, 그리하여 어느만큼은 그 꿈을 이룬 사람들처럼 즐거워보였다. 그 무리들 속에 내가 비집고 들어갈 공간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그들은 그들만의 은밀하고도 굳은 결속을 다..

회색노트 2005.10.12

이별 후

우리가 만났던 지날 토요일 이후로계속 앓고 있었어(오늘 나는 오전근무를 아예 포기했어)지금은무심히 스쳐가는 바람까지도내게는 칼날처럼 아프게 느껴져왜 내가 이래야 하는지를 말하지 않겠어어차피 서로가 늘 회피해왔던 거니깐아무도 나를 알 수는 없어선배에게로 가는 내 시선은선배가 생각하는 것보다도내가 아는 것보다도더 깊고더 슬프고더 따사로와가끔씩은 고통스러워나와 관련된 모든 것이 실재하는 것이기에나,선배,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들....1994년 어느날

회색노트 2005.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