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책
너를 내 방으로 데려온 날
어제인 듯 나 기억하네 방안 가득
햇살 눈부셔 잠시 어찔했던 그날을
틈만 나면 들추는 내 손길에
너는 지금 너덜너덜한 몸으로
나를 익숙하게 받아들이며 너의 검은 눈동자
그 속 알갱이 하나하나 모두
나에게 내주지만 처음의 너는
빳빳한 몸을 곤두세워 마치 막 건져 올린
물고기처럼 파다닥거리며 내 손가락
서툰 몸짓에 여지없이 상처를 내어 가끔은
손금 따라 내 가슴 속까지
가느다란 피의 강물
간혹 너를 안아들고 살금살금 쓰다듬으며
사랑한다는 말 눈으로만 너에게 전하는데
나와 함께 늙어가며 군데군데 부실해지는 너의 몸은
여전히 내 손길에 뜨거워지는구나 그럼에도
나 가끔은 너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휘황찬란한 옷차림 가벼운 손짓들로
이리저리 돌아다녀 보지만
그것도 잠깐
너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오곤 하는데
어떡하면 좋으냐
이미 오래된
그대여
허교수님이 시집도 내셨구나...
인터넷 서핑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허교수님 덕분에 참 오랫만에 시를 읽어본다...
참...좋다...
안타깝고 안쓰럽게 끌어안고 있는 교수님의 저 오래된 책처럼
교수님이 내게 내어주었던 그 시절의 박카스 한 병이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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