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였다.
학교 마치고 집으로 걸어오는데
도로변 건물 입구쪽에서 누가 불렀다.
중3? 또는 고1? 쯤 되어보이는 남자애들 몇명이
껌 씹으면서 날 꼴아보고 있었다.
왜 그러는데요?라고 물으니
돈 있으면 내 놓으라더라.
천연덕스럽게 돈 없다라고 했더니
뒤져서 나오면 나올때마다 한 대씩 때린다고 해서
그러라 했다.
그랬더니, 지들끼리 모라모라 하더니 그냥 가라더라.
중3 때였나보다.
태권도를 했던 친구넘이랑 석촌호수로 놀러갔다.
잠실 지하철역을 막 빠져나오는데
입구에서 누가 부르는거 같아서 쳐다보니
헐...
요즘말로 일진 고딩형아들 너댓명이 서있었다.
그중 머리 짧고 키가 좀 커보이는 형이
가까이 오라더니 돈 있냐? 그러더라.
친구넘은 곧장 침묵모드 ㅡ,ㅡ
난 그 형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없는데요, 라고 했다.
너 뒤져서 나오면 죽는다?
네, 뒤져보세요.
너무나 당연하다는듯이 돈없다고 말하는 내가 어이가 없었던건지,
아님 진짜로 돈이 없다고 생각한건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은 그냥 가라고 했다.
참 다행이지...
주머니 속에 있던 돈보다
가지고간 사진기 뺏길까봐 그게 제일 걱정이었는데 후..
딱 한번 돈 뺏긴 적이 있긴 했다.
고1때, 집근처에 도서관이 없어 강동구까지 버스타고 가서 공부하던 시절.
그날도 공부하고 밤 10시쯤 친구넘이랑 도서관에서 나와 버스를 타러 공터를 지나가는데 누가 부르더라.
쳐다보니까, 중학생 되보이는 작은 녀석인데 헐,
한 열명쯤 모여있는듯.
게중 한 두넘은 손에 각목까지 들고 있더라.
속으로 기가 찼지만 머릿수에 밀리니 고분고분 불려갔는데
결국 돈 달라는 소리.
그래서 내가 없다고 하니
날 불렀던 넘이 주먹으로 가슴을 한대 퍽.
솔직히 전혀 아프진 않아서 함 붙어볼까 했는데
친구넘이 이미 전투력 상실 ㅡ,ㅡ
뒤져서 나오면 뒈진다길래
그냥 주머니 속에 있던 500원짜리 동전 하나 꺼내 줬다.
이거 뿐이다, 하니
또 같은 레퍼토리.
뒤져서 나오면 나올때마다 한대씩이라길래
뒤져보라 했다.
그랬더니 약간 고민하더니 걍 가라더라.
지갑 보자 안한게 참 다행이었지.
고3때, 반에 싸움을 잘하는 애가 있었다.
눈치로 봤을 땐 아마도 요즘 말로 학교짱 아니면 서열상 3위 이내 들어갈만한 녀석.
이 녀석은 점심시간만 되면 포크 하나들고 돌아다니면서 애들 반찬 다 뺏어먹고
수업시간엔 '빨간책' 꺼내 보고
그러다 여선생(당시 우리가 남학교였고 여선생은 2명 뿐이었다) 수업시간이기라도 하면
미리 꺼내먹은 빈도시락통에 젓가락 집어넣고 막 흔들어대며 수업을 방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여선생을 골려먹는 재미로 학교 다니는 꼴통이었다.
반에 나름 키카 컸던 한 녀석이 이녀석에게 개겼다가 화장실에서 얻어맞고 도망가니
하루종일 포크들고 잡으러 쫓아다니기도 했었다.
당시 난 첫사랑과의 연애의 질곡에서 벗어나
집과 독서실만 오가며 오로지 열공하던 시기였다.
그러던 중 한학기가 지난 어느날 담임쌤이 갑자기 자리를 자율배정한다고 하셨다.
즉, 학교 오는대로 자기가 앉고 싶은 자리에 앉으라는 얘기.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암튼, 어느날, 그 녀석이 짝이 되고 말았는데
난 지금도 그 날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 온갖 막장짓을 하던 애가
이상하게 그날은 하루종일 내 옆에서 엎드려 잠만 자더라.
왜 그랬을까?
나는 수업에 집중할 수 있어 너무 좋았지만
지금도 그녀석이 그날 왜 그랬는지는 이해할 수가 없다.
물론 그녀석이 조용했던건 나와 짝이 되었던 그날 뿐이었다.
음...
참 재밌는게, 이 친구, 대학갔다.
대전에 있는 4년제 M대학.
당시엔 시험보고 본고사까지 봤던거 같은데
담임도 글코 애들도 다들 놀래서 아무 말도 못했던 그날의 분위기를 잊을 수가 없다.
지금쯤 얘네들은 뭐하고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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