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노트

그냥 문득, 옛날 생각

길을 묻는 길냥이에게_the캣 2018. 6. 11. 00:26

 

중학생 때였다.

학교 마치고 집으로 걸어오는데

도로변 건물 입구쪽에서 누가 불렀다.

중3? 또는 고1? 쯤 되어보이는 남자애들 몇명이

껌 씹으면서 날 꼴아보고 있었다.

왜 그러는데요?라고 물으니

돈 있으면 내 놓으라더라.

천연덕스럽게 돈 없다라고 했더니

뒤져서 나오면 나올때마다 한 대씩 때린다고 해서

그러라 했다.

그랬더니, 지들끼리 모라모라 하더니 그냥 가라더라.

 


중3 때였나보다.

태권도를 했던 친구넘이랑 석촌호수로 놀러갔다.

잠실 지하철역을 막 빠져나오는데

입구에서 누가 부르는거 같아서 쳐다보니

헐...

요즘말로 일진 고딩형아들 너댓명이 서있었다.

그중 머리 짧고 키가 좀 커보이는 형이

가까이 오라더니 돈 있냐? 그러더라.

친구넘은 곧장 침묵모드 ㅡ,ㅡ

난 그 형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없는데요, 라고 했다.

너 뒤져서 나오면 죽는다?

네, 뒤져보세요.

너무나 당연하다는듯이  돈없다고 말하는 내가 어이가 없었던건지,

아님 진짜로 돈이 없다고 생각한건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은 그냥 가라고 했다.

참 다행이지...

주머니 속에 있던 돈보다

가지고간 사진기 뺏길까봐 그게 제일 걱정이었는데 후..

 

딱 한번 돈 뺏긴 적이 있긴 했다.

고1때, 집근처에 도서관이 없어 강동구까지 버스타고 가서 공부하던 시절.

그날도 공부하고 밤 10시쯤 친구넘이랑 도서관에서 나와 버스를 타러 공터를 지나가는데 누가 부르더라.

쳐다보니까, 중학생 되보이는 작은 녀석인데 헐,

한 열명쯤 모여있는듯.

게중 한 두넘은 손에 각목까지 들고 있더라.

속으로 기가 찼지만 머릿수에 밀리니 고분고분 불려갔는데

결국 돈 달라는 소리.

그래서 내가 없다고 하니

날 불렀던 넘이 주먹으로 가슴을 한대 퍽.

솔직히 전혀 아프진 않아서 함 붙어볼까 했는데

친구넘이 이미 전투력 상실 ㅡ,ㅡ

뒤져서 나오면 뒈진다길래

그냥 주머니 속에 있던 500원짜리 동전 하나 꺼내 줬다.

이거 뿐이다, 하니

또 같은 레퍼토리.

뒤져서 나오면 나올때마다 한대씩이라길래

뒤져보라 했다.

그랬더니 약간 고민하더니 걍 가라더라.

지갑 보자 안한게 참 다행이었지.


 

고3때, 반에 싸움을 잘하는 애가 있었다.

눈치로 봤을 땐 아마도 요즘 말로 학교짱 아니면 서열상 3위 이내 들어갈만한 녀석.

이 녀석은 점심시간만 되면 포크 하나들고 돌아다니면서 애들 반찬 다 뺏어먹고

수업시간엔 '빨간책' 꺼내 보고

그러다 여선생(당시 우리가 남학교였고 여선생은 2명 뿐이었다) 수업시간이기라도 하면

미리 꺼내먹은 빈도시락통에 젓가락 집어넣고 막 흔들어대며 수업을 방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여선생을 골려먹는 재미로 학교 다니는 꼴통이었다.

반에 나름 키카 컸던 한 녀석이 이녀석에게 개겼다가 화장실에서 얻어맞고 도망가니

하루종일 포크들고 잡으러 쫓아다니기도 했었다. 

당시 난 첫사랑과의 연애의 질곡에서 벗어나

집과 독서실만 오가며 오로지 열공하던 시기였다.

그러던 중 한학기가 지난 어느날 담임쌤이 갑자기 자리를 자율배정한다고 하셨다.

즉, 학교 오는대로 자기가 앉고 싶은 자리에 앉으라는 얘기.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암튼, 어느날, 그 녀석이 짝이 되고 말았는데

난 지금도 그 날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 온갖 막장짓을 하던 애가

이상하게 그날은 하루종일 내 옆에서 엎드려 잠만 자더라.

왜 그랬을까?

나는 수업에 집중할 수 있어 너무 좋았지만

지금도 그녀석이 그날 왜 그랬는지는 이해할 수가 없다.

물론 그녀석이 조용했던건 나와 짝이 되었던 그날 뿐이었다.

음...

참 재밌는게, 이 친구, 대학갔다.

대전에 있는 4년제 M대학.

당시엔 시험보고 본고사까지 봤던거 같은데

담임도 글코 애들도 다들 놀래서 아무 말도 못했던 그날의 분위기를 잊을 수가 없다.


 

 

지금쯤 얘네들은 뭐하고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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