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4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처음으로 오후 수업까지 받게 되어서 도시락을 가져왔던 그 날.
김치 반찬이 들어있던 노란 변또 도시락.
그 시절에는 대부분 그런 식이었는데도
나는 그날 그 밥을 먹지 않았다.
처음으로 생긴 여자 짝꿍에게 창피하다고 느꼈었다 ...
최근에 읽은 박경철의사의 글에서
우연히 같은 경험에 관한 글을 읽고 가슴이 찡했다.
그 분은 시골에서 나름 우월한(?) 존재였다가
서울와서 처음 좌절감을 느꼈는데
그 계기가 도시락이었다고...
플라스틱 밥통에
지금은 잘 먹지도 않는 그런 햄반찬에 견줄 수가 없었던
자신의 노란 변또도시락통이 너무나 부끄러워서
차마 책상 위에 꺼내놓질 못했다고 ...
그 후 한동안 활발했던 성격이
소심하고 말 수 적은 아이로 변해갔다는 ...
그분은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좋은 담임선생님을 만나
빨리 좌절감을 털어낼 수 있었다는데
나는 그러질 못했다.
외로움이 짙으면 고독이 되는 거였을까?
원래부터 나는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지만
이 일을 계기로 더욱 말 수가 없어져갔다.
처음에는 그렇게 아이들과 괴리되어가는 내 존재가 싫었지만
어느날부터는 내 자신이 스스로 아이들과 떨어져있는걸 원했다.
거의 없는 듯한, 왕따에 가까운 존재처럼 지내게 되었지만
스스로 그런 현실에 대해 만족했다고 하면 믿어지겠나?
하지만 사실이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나는 분명 외로움을 느낀게 아니라 고독감 속에 존재했고
그것이 크게 잘못되고 있다고 느끼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적어도 행동양식에 있어서는
학교생활에 충실한 모범생이었고 사고 한번 친 적 없었으니까.
요즘 마트에 갈 적마다
서점코너에서 내 눈을 잡아끄는 책이 있었다.
어느날엔가는 잠시 집어서 몇 페이지를 읽었는데
지루하지 않게 글을 참 재미있게 잘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아직 읽지 못한 책들 때문에 다시 제자리에 놓아두고 오긴 했지만
꼭 한번 읽어봐야지 하는 책이었다.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내가 잘 표현하지 못했던 그런 얘기들을
나 대신 해주고 있는 그런 책.
약간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 인터뷰에서 저자가 했던 얘기몇 줄과 그것에 관한 내생각을 남겨보았다.
“살다 보면 외로울 때가 잦다. 그럴 때 자기만의 시간, 공간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외롭고 허전하면 그 감정을 남에게 주려고 한다. 위로해달라고 한다. 하지만 상대방이 내 기대만큼 해주지 않으면, 나는 더 외로움이 깊어지게 되는 거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 간에도 ‘솔리튜드’의 공간과 시간을 보장해줘야 한다.
나 역시 힘들 때는 틀어박힌다.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책을 보는 게 가장 좋은 시간인 것 같다. 처한 상황을 잠시 잊거나, 다른 생각에 빠질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거다. 그렇게 성숙하는 시간 없이 남에게만 치유 받으려고 하면, 더 곤란해질 수 있다. 관계에도 적정거리가 꼭 필요하다(한상복님).”
'외로움과 고독감의 차이'에 관한저자의 답.개인적으로 신혼 초에 전업주부인 아내는 필요이상으로 내게 의존하고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 가끔 다툼이 있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아내에게백지 위에 동그라미 두개를 그려놓고 이렇게말했다. '동그라미 두 개는 각각 너와 나다. 우리가 결혼했으니 동그라미 두 개가 겹쳐진거다. 하지만 온전히 하나의 동그라미가 될 수는 없다. 너와 내가 각각 살아온 시간과 경험이 다르기에. 그래서 일부가 겹쳐지는 거다. 이렇게 겹쳐지는 부분이 너와 내가 함께 하는 부분이야. 하지만 겹쳐지지 않은, 겹쳐질 수 없는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가 터치할 수도, 간섭할 수도 없는 부분이다. 너에게도 있는 부분이고 내게도 있어. 부부가 존중한다는 것은 바로 이 겹쳐지지 않는 부분에 대해 사실 그대로 인정하는 걸 의미한다. 나는 네가 이 공유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인정해주었으면 좋겠다.' 나는아내에게 한상복님이 말한관계의 적정거리에 대해 인정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말했던 것이고, 이후 다툼은 많이 줄었다는 얘기(더캣).
“대개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살 때가 잦다. 그 성찰을 하기 위해서 외로움에 들어가 ‘솔리튜드’ 단계로 거듭나야 한다. 외로움과 두려움을 인정하기 싫어, 자꾸만 자신을 치장하려고 하지만, 인정하는 것이 시작이다.
20대, 30대에는 뛰어난 사람 곁에 있으면 나도 그렇게 될 것만 같다. 하지만 가장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상태는 나 자신 그대로가 만족스러운 상태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보다, 지금 이대로 나를 좋아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아쉬운 부분이야 물론 있겠지만, 조금씩 채워나가는 거다.”
내가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았던건, 또다른 나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은 진정으로 타인에게 간섭받지 않고, 방해받지 않으면서 온전하게 나를 만나는 그런 시간이었다. 말없이 다른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나의 존재에 대한 성찰이 깊어졌다고나 할까. 그래서 분명 나는 외롭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에서 말썽부릴 필요도 없었고 학교생활에 크게 불평을 가질 이유도 없었던 것이었다(더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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