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내리는 가을 하늘은 정갈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지금은 바람이 불고 잿빛 아스팔트 위로 플라타너스잎들이 바스락거리며 나뒹군다. 쓸어모아 태우지 않으면 그것들은 결국 끝도없이 굴러갈 것만 같다-회귀의 불가능성.
나는 돌아오지 않는 사람보단 사물들의 불귀현상을 더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녀에 대해서 특히 그러했다. 한없이 캄캄해지는 마음 뿐이었다. 잊자, 잊자, 잊어버리자... 수도없이 되뇌이며 창가를 서성거려 보았지만 끝끝내, 마음에 이끼처럼 낀 불안은 가셔지지 않았다.
실은 그녀가 나를 떠났다. 이미 6개월 전의 일이었는데, 그럼에도 사건적이지 못한 나에게는 그것이 꿈만같이 느껴졌다. 사건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이기적이거나 혹은 지혜롭지 못해 불행해진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특성이었고, 그점에 있어서는 나도 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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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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