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캣생각

아빠가 미안해 ..

길을 묻는 길냥이에게_the캣 2005. 10. 1. 03:06

저에게는 이쁜 딸이 하나 있습니다.
새침데기에 가끔씩 샐쭉 토라지는 폼이 영락없이 엄마를 닮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자아이입니다.

집에서 저는 잔소리가 많은 편입니다.
유독 아이에 관해서, 특히 아이의 보호에 관한 잔소리가 심한 편입니다.
아내는 저의 잔소리를 싫어하지만 왠만한건 그냥 참고 따라주는 편입니다.
제가 이러는 이유가 저의 예민한 성격 때문만은 아니라는걸 알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저의 딸은 만 세 살의 나이로 어른들도 힘든 큰 수술을
두 차례나 치렀습니다.
처음엔 간단한 성형수술 정도로만 판단했던게 제일 큰 실수였습니다.
처음부터 제대로 판단을 했다면
전 아마 가장 훌륭한 병원에 아이의 수술을 맡겼을 겁니다.
처음부터 부모가 아이의 상태를 제대로 살피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아이는 형편없는 의사에게 4시간에 걸친 형편없는 수술을 받아야했습니다.
결국 ‘완치’되었다던 아이의 귀에서 피가 흐르는걸 보면서 아내는 길에서 큰소리로 울어야했고,
그 형편없는 담당의사에게서 가장 최악의 형편없는 대답(약을 다시 먹으면 된다는)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이런 처죽일넘 ㅠ.ㅠ;;)
전 거의 반 미치광이 상태가 되어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나를 피해 꼭꼭 숨어버린 그 ‘죽일넘’을 결국 찾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복도로 달려나와서 내앞에서 무조건 미안하다고 의사의 잘못을 대신 비는 인턴 앞에서
결국 그날로 아이를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를 다른 큰 병원으로 데려가면서 저는 내내 아이에게 죄인이었습니다.
그 힘든 수술을 꾸꿋하게 견뎌낸 우리 아이였지만
수술 후 경과치료를 다니러 갈적마다 병원 문앞에서 머뭇머뭇하며
‘엄마 나 이제 수술 안해도 되지?’ 이렇게 몇 번씩 되묻고 약속을 받던 아이를
저는 또다시 수술대 위에 누이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후,

재수술을 마치고 회복실에서 수술대위에 혼자 누워 울고있던 딸아이의 절절한 울음소리를
저는 아직도 잊지를 못합니다.
이럴 때마다 제가 혼자서 마음속으로 수차례 다짐하는건,
다시는 우리아이가 아프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행여 길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아내에게 곧바로 싫은 소릴 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길가다 아이가 뒤로 넘어져 뇌진탕을 일으킬까봐 두렵고 걱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저의 잔소리에 인상을 쓰다가도 곧바로 저의 마음을 읽어냅니다.

제대로 상황을 판단하지 못해서,
아이에게 최선의 마음을 써주지 못해서
한번만 겪어도 힘들었을 큰 수술을 두 번 씩이나 겪게 만든 이 아빠는
늘 딸아이에게 죄인으로 살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부모된 분들은 아이에게 사소한 것 하나라도 세밀하게 신경을 써주어야
아이가 무탈한 법입니다.
때를 놓쳐서, 자기가 바빠서 아이에게 잠시라도 소홀하다 보면
사고나 병고가 생길 수 있고
이로 인해 아이가 평생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과보호라 하지 마시고, 진실로 아이가 다 자라기 전까지는
늘 아이의 마음과 건강상태와 안전에 최선의 신경을 써주셔야
때늦은 후회가 없을 듯 합니다.

앞으로 저는 한가지 할 일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아이가 어려서 그냥 넘어가지만,
우리 아이가 어느정도 자란 다음에는 아이를 데리고 그 형편없는 의사를 찾아가
사과를 받는 일입니다.
그리고는 용서하게 할 겁니다.
아빠, 엄마가 할 수 없는 용서를 우리 아이가 할 수 있게 할겁니다.
비록 알아들을 수 없는 기록이지만 그간의 진찰기록을 제가 보관하고 있는 이유도
다 이런 까닭입니다.

오늘 저는 아이랑 아내랑 셋이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모처럼의 점심 동반식사라 아이가 무척 즐거워했습니다.
웃는 딸아이의 얼굴이 봄볕처럼 환하고 밝게 빛났습니다....

200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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