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몰랐어요"
"죄송해요"
"다른 방법 없나요?"
"학생이 원하면 당연히 해줘야하는거 아닙니까?"
일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들 ...
학칙과 학사일정, 문자통보까지 무시하면서 제 볼일만보며 지내다가
휴학이 불가능해지거나 제적이 된 후에야 비로소찾아와서 매달리는 아이들이
꼭 하는 말들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나는 처음부터 매우 엄하고 단호하게 이렇게 야단을 친다.
'모르는건 죄다. 몰랐다는 것이 구제의 사유가 될 수 없다'
'나한테가 아니라 너 자신과 너의 부모님에게 죄송한 마음을 가져라'
'나한테 편법을 구하는 것이냐? 편법을 요구하는건 학생답지 못하니 내 앞에서 그런식으로 말하지마라'
'학생이 원하면 해줘야한다고? 학생이 벼슬인가? 학생이면 학칙과 교육법을 무시해도 된단 말이냐? 당장 나가 쨔샤~!'
이때쯤 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비로소 나란 사람에 대해 완전히 감을 잡고 바짝 엎드려
잘못을 빈다.
# Scene1
대학 중간고사 시작이후 한 학생이 헐레벌떡 나를 찾아왔다.
사연인즉, 10.26 군대를 가기에 등록금만 내고 수강신청도 안하고 가사휴학도 하지 않고
놀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중간고사 이후에 군에 가게되면 미리 휴학해야한다고 해서
구제를 해달라고 찾아온 것이었다.
녀석은 이번학기 등록금을 모두 날리고 결국 학사경고까지 받으면서 입대를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녀석에게 호되게 야단을 쳤다.
"홈페이지에 안내되어있는 사항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 어떡하니?"
"너 신입생이야?
"똑같이 시험치고 대학에 들어와서 누군 스스로 알아서 잘하는데 누군 이런식으로 찾아와서
구제해달라고 사정사정하고.. 왜 이렇게 사는건데? 너 이런식으로 늘 남한테 사정하면서 살면
졸업하고 사회나가서도 늘 남에게 부탁하면서 살게된다. 계속 이렇게 살래?"
"내가 건방지게 충고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게지만 너의 선배로서 내가 할말을 하는거야.
무슨 뜻인지 알어?"
녀석은 너무나 쉽게 스스로의 실수를 인정했고 결국 별도의 구제요청서를 쓰고난 후
휴학조치가 되었다.
# Scene2
예쁜 여학생 하나가 급하게 나를 찾았다.
사연인즉, 부모님이 등록금을 납부해준줄 알았는데 등록이 안되어 제적이 된 상태라는 것이었다.
내 앞에서 녀석은 "잘 몰랐어요"라며 구제를 요청했다.
난 단호하게 "몰랐다는건 이유가 안돼. 너에게 학과와 본부에서 세번이상 통보를 해주었는데
어떻게 몰랐다는것이 말이되겠니? 구제 못해줘"라고 말했다.
순간 눈물을 끌썽이는 녀석..
태도를 바꿔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졸업을 할 수 있게끔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녀석에게 다시한번 따끔한 지적을 하고 통계작업중인 것을 중단시킨 후 복적을 시켜주었다.
금새 생기를 찾은 녀석은 시험 후에 인사하러 오겠다면서 도서관으로 돌아갔다.
# Scene3
한 여학생이 찾아와 P에게 복적을 요구했다.
사연인즉, 본인이 등록을 못했지만사전에 학과로부터 어떠한 전화통보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학과로부터 전화 연락이 못간건 자기가 바뀐 전화번호를 뒤늦게 정정한 탓이었다.
주소는 바뀌지 않았으므로 사전에 우리가 보낸 등기통보는 분명 받아보았을 터였다.
그럼에도 녀석의 태도는 선처를 구하는 학생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당당하게 요구하는듯한 모양새였다.
난감해진 P가 나에게 구제방법이 있겠냐고 물어왔다.
"구제 안돼! 연락을 받지 못했다는건 구제사유가 아냐. 게다가 이미 수업일수 1/3이 지났자나."
녀석이 태도를 바꾸고 정중하고 솔직하게 다시 요청했으면 솔직히 구제를 해줄 수도 있었다.
녀석은 사실 제적이 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등록을 못했던건 복잡한 개인사정이 있었을 터였다.
그런 것들을 사실대로 말하고 이해를 구하였다면
번거롭고 귀찮더라도 이미 진행중인 다른 학사일정들을 중단시키고 학생을 구제할 방법을
찾아주었을 것이었다.
결국 녀석은 태도를 바꾸지 않았고 구제도 되지 않았다.
평소와 달리 녀석을 구제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 전혀 마음이 아프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녀석이 사무실을 나가면서 P에게 했다는 말때문이었다.
녀석은깐깐해보이는 나대신마음여려보이는 P에게 사무실을 나가면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여기 윗선이 어디에요?"
스스로의 일은 스스로가 챙겼어야하는데 그러지 못해 벌어진 일들에 대해
대부분의 아이들이 남탓을 한다.
당연히 알아야하고 또 대부분의 아이들이 알고 있는걸몰랐다고 하는건
결코자랑이 아니거늘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그걸 빌미로
곤란함을 벗어나려 애쓴다.
당연히 편법이 있을거라 믿는 아이들을 보면 요즘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같아
씁쓸하기까지 했다.
내가 야단치는 의도를 대부분의 아이들은 뒤늦게나마 깨달았다.
대개 반말하거나(아이들을 야단칠때 난 의도적으로 존대를 버린다)
나의 야단치는 태도에 감정이 상할만도 했겠지만
내 말이 전혀 틀리지 않음을 알기에
또한 아직까진 그래도 비교적 순수한 아이들이기에
금새 정색을 하고 '잘못했습니다'라고 인정을 하는 것이다.
이쯤되면 나도 비로소 마음이 풀어져서
아이들이 구제될 수 있도록 최선의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너무 쉽고 안이하게 곤란함을 벗어날 방법을 찾는 아이들..
어려서부터 누군가가 챙겨주고 자기 일을 대신 해주는 배려(?) 속에서 살아온 아이들이기에
대학에 와서까지 '배려'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아이들을 상대하면서 일을 한다는건
정말 힘들고 지치는 일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나의 지적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잘못을 깨닫고 태도를 바꿔 온전한 말과 행동을 보여줄 때에는
내가 하는일에 대해 보람과 즐거움을 얻게 된다.
다른 동료들은 그냥 구제해주지 왜 그렇게 힘들게 야단쳐가면서 일을 하냐고 하지만
적어도 나만은 아이들에게서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솔직히
많이 지쳐가는것 또한 사실...
휴......
Inger Marie Gundersen - Melancholy 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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