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학부의 졸업요건에 관한 사항인데 학칙에는 없고 대학원에 관련 규정이 있었다. 그 규정에 의해 한 학생이 졸업을 못하게 되었다며, 그 학생을 구제해주기 위해 대학원 학칙을 변경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학칙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다른 대학들의 관련 학칙들도 살펴본 후, 원래 학칙에 있어야 하는 내용이니 대학원 학칙에서는 관련 규정을 삭제하겠다, 대신 교무처에서 학칙에 관련 내용을 추가하는게 맞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후 며칠이 지나고 나서 이상한 얘기들이 들려왔다. 내가 학칙개정을 반대해서 그 학생이 졸업하는데 문제가 있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교무처 관련팀장과 학장에게 전화해서 회의를 하자고 한 후, 당일날 다 함께 모이자마자 학장에게 바로 한 마디했다. 프레임짜고 엄한 사람 잡지 마세요. 왜 학부학생 졸업 못하는 문제를 대학원 학칙 때문이라고 하시는겁니까? 관련부서 팀장에게도, 너 일 그렇게 하는거 아니야. 내가 당장 이 자리에서 교육부에 전화할까? 라고 한마디 했다. 그랬더니 학장은 아무 말도 못하고 얼굴만 붉히고 앉아 있었고, 관련부서 팀장도 그저 묵묵부답 상태로 앉아 있었다. 사실 이 건은 규정을 개정한다 해도 소급 적용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후, 이들이 단독적으로 규정개정을 추진했으나 내가 지적한 사유로 규정심의위원회에서 보기좋게 퇴짜를 맞고 말았다. 결론적으로 내가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긴 했지만, 이 때 만약 내가 제대로 내 주장을 말하지 못하고 그저 상대방 얘기만 듣고만 있었다면, 그리고 나중에 반박했다면 난 그들이 짜놓은 프레임에 갇혀서 오히려 행정을 소극적으로 하려는 나쁜 직원으로 박제되었을 것이다. 경험상 내가 먼저 당당하게, 그리고 명확하게 내 할말을 하지 못했다면 분명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직장에서 본부를 떠나 외곽부서로 가게되면서 사람을 우습게 여기는 경향들이 있는데, 무엇보다 직전까지 본부부서에서만 일을 해왔던 나를 바보취급하면서 모함을 하는 것 같아 너무 화가 났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사람들이 더는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거라고 믿었었다.
2, 3년이 흐른 지금, 그때의 당당했던 나는 사라지고 자꾸 움츠려들고 사람들과 부딪치는걸 피하게되는 나를 보게 된다. 여러가지 많은 외부적인 상황들이 있지만 내가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스스로를 위축시키고 있는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저 일도 잘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후배들이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들에도 예전처럼 그자리에서 화를 내기보다는 그저 피해가려는 경향도 느껴졌다. 화를 내려다가도 혹시 저 사람이 나로 인해 먼저 기분나쁜 일이 있었던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요즘 내가 하는 말 중에 다 내탓이지 뭐, 이런 얘기가 많았던 것도 같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몸이 늙고 아프면서 그런건지, 아님 나의 그런 생각들이 내 몸을 병들게 하는 건지 ... 모르겠다. 내가 변해가는 걸까? 나이들면 절대 화를 내지 말라는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려서 그러는걸까? 그래도 진짜 요즘 이런 내 모습은 나답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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