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캣생각

컨닝

길을 묻는 길냥이에게_the캣 2005. 10. 1. 01:49

시험중 학생들의 컨닝행위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온 학교의 중요한 풍경 중 하나다. 바퀴벌레처럼 박멸이 어려운 인간의 전통적(?) 일탈행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생시절, 나는 컨닝은 커녕 남앞에서 책읽는 것 조차 벌벌 떨 정도로 극히 내성적이고 소심한 아이였다. 하지만 시력이 나빴던 관계로 시험시간때면 칠판 문제가 안보여 짝꿍에게 물어야했고 그때마다 내게는 내 순수하고도 난감한 심정과는 다르게 의혹의 눈초리들이 되돌아오곤 했었다. 내가 지금껏 명예를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연유는 아마 이러한 추억들로부터 비롯되었으리라.

지성의 전당이라할 대학에서도 컨닝의 풍경은 전혀 없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전공시험때면 책상과 벽은 예상문제 답안들로 빼곡하게 들어찼고 교수나 조교는 그런 것들을 못본척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렇게 부정행위로 시험을 치른 선배들은 B+밖에 안나왔다느니, A-는 너무 못나왔으니 성적이의신청을 해야겠다는 등 시험결과에 대해 매우 뻔뻔스런 행동양태들을 보여주었었다. 그들이 얼마나 밉고 한심스러웠는지.. 후

그러던 내게 드디어 복수의 날이 왔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시험시간을 감독하는 조교가 된 것이다 ㅎㅎ 정말 신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나름대로의 경험을 토대로 부정행위 감독에 대한 요령들을 익혀나가면서 나는 후배들에게 거의 완벽한 감독관으로 자리잡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고 조교가 되었던 탓에 복학한 선배들도 나의 감독을 받아야하는 처지가 되었었다. 그때의 의기양양함이란 ㅎㅎ..

그때의 업적(?) 중 기억나는 두가지 일이 있었다. 한 후배 녀석이 대리시험을 시켰다가 나에게 적발이 된 것이다. 그것도 하루에 두 과목 모두 나의 날카로움을 피해가지 못하고 걸려들었던 것이다. 평소 육중한 오토바이에 여자아이들을 태우고 다니던, 조폭 스탈의 특례입학생출신 후배녀석이었다. 난 당장 녀석을 과사무실로 호출했다. 신입생때 적응을 못해 대만으로 가출했던 녀석이었다. 머뭇머뭇거리며 과방문을 들어서는 녀석에게 호통부터 쳤다. 순간 녀석의 행동은.. 정말이지 나를 무척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녀석은 나의 불호령 한마디에 놀래서 그만 닭똥같은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던 것이다 ㅡㅡ;;

화교출신인 녀석에게 문제는 한국어였다. 계속되는 전공과목 권총(F)시리즈에 이미 졸업까지 연기된 녀석은 최후의 방법을 찾았던 것인데 재수없게도 그 시작부터 칼같은 나의 예리함에 걸려들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난 적당히 녀석의 죄과를 얼버무리기로 하고 재시험을 치르게 하는걸로 끝내고 말았다.

이후 녀석은 나를 볼때마다 90도로 절을 한다. 녀석은 참고로 워커힐호텔 근처 유명 중국음식점집 사장의 아들로 지금 열심히 철가방을 나르며 신나게 돈을 벌고 있다. 여담이지만 이녀석네 탕수육은 정말 이세상 최고의 맛이다^^;

또 한번은 가정대학 영어시험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난 매우 차갑고 절제된 시험감독관이었지만 그러한 나의 싸늘함마저 녹여버리는 곳이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가정대학이었다 ㅡㅡ;; 여학생들의 컨닝은 정말이지 섹시함 그자체였다ㅡㅡ;;; 손바닥에 쥐고 보던 페이퍼가 나의 레이다망에 포착되는 순간 그것은 순식간에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곳으로 숨겨지곤 했던 것이다. 그곳은 바로 여인네들의 치맛속이었다 ㅡㅡ;; 난 그 여학생들을 책망하기는커녕 감히 쳐다보기조차 못했다. 내 시선이 그녀들의 손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 내 얼굴은 홍당무가 되어 무조건 고개를 돌리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어이없는 일들이 서너차례 반복되는 동안 드디어 화풀이 대상을 찾게되었다. 여자대학이지만 디자인과에는 남학생이 몇 있게 마련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나의 레이다망에 걸려들었던 것이다. 녀석의 일탈행위를 반복해서 발견하는 순간 난 제비처럼 날아서 녀석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녀석의 반항은 의외로 거셌다. 교수님이 같이 감독하는 자리였지만 녀석은 시침을 떼는 수준에서 벗어나 강경하게 나와 맞섰다. 잠시 고함이 두세번 오가고난 후 난 독오른 독사마냥 얼굴이 붉어져서 녀석을 과방으로 호출했다.

과방은 사실 나의 홈그라운드이다. 독사가 사는 뱀굴이라고나 할까.. 때문에 왠만한 아이들은 과방에 들어서며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대부분 주눅이 들어 쭈뼛쭈뼛 서있기 마련이었다. 녀석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녀석은 다짜고짜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었다. 자기는 복학생인데 후배들 앞에서 내가 너무 몰아세우니 화가나서 그랬다며 무조건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었다. 녀석이 자꾸 복학생체면 운운해서 얼결에 나이를 묻게되었는데 이런 ㅡㅡ;.. 녀석은 나와 동갑내기였다. 쩝..순간적으로 녀석에게 자비심이 생겨 재시험을 치르게 하고 놓아줬다. 이후 녀석은 행정학과로 전과를 했고 내가 대학에서 일하게된 후에도 어쩌다 길에서 마주치면 먼저 인사를 건네곤 했다. 물론 돌아설때 녀석의 입가에 쓸쓸하게 감도는 미소를 난 매번 놓치지 않고 확인했다 (ㅡㅡ;)


시험은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일수도 즐거운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어차피 시험의 연속일터.. 기왕 마주쳐야할 시련이라면 정정당당하게 맞서는 게 좋을 듯 싶습니다. 직장생활 8년차 경험에 비추어보더라도 당장의 어려움을 모면코자 떳떳하지 못한 방책을 쓸 경우 그 부담은 나중에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몫으로 되돌아왔었습니다..


힘겹지만 열심히 정정당당하게 살아가는 모든 분들게 파이팅을 외칩니다~아자!아자!!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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