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캣생각

박용성이사장 인터뷰

길을 묻는 길냥이에게_the캣 2009. 6. 9. 22:47

전통적으로 대학은 상아탑으로 대표되는 연구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그 전통이 현대에 와서는 많이 공격을 받고 있다. 다름 아닌 실용성의 부족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고객'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학생이, 대외적으로는 학부모와 기업이 대학의 고객인데, 이 고객들로부터 대학이 지탄을 받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럴 수 밖에. 학위로 존경받는 시대에는 연구실적이 최고의 가치였지만 지금은 변했다. 석박사 학위자가 흔해지면서, 대학마다 상징으로 설치되었던 상아탑이 하나둘씩 사라지면서 연구보다는 교육의 기능이 훨씬 중요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학은 '연구중'이다. 각종 대학평가에서도 최고의 가치는 교수들의 연구실적에 두고 있어 교육의 효용성이나 실용성에 관한 평가는 늘 관심밖이었다. 내부 고객인 학생들은 교수들의 연구실적에는 관심도 없는데도 말이다. 한마디로 '그들만의 리그'다. 식자층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평가항목과 방식을결정하고 일방적으로 심사를 들이대면서 생긴 현상이다. 이로 인해 대학 재정을 위태하게 하는 교수 충원은 계속 증가하였고 교육에 필요한 기자재와 시설은 계속 낙후된 채로 남게되는 불합리한 행정수행이 반복되고 있다.*

(*교수확보율을 충족하는 방법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교수수의 절대적 증가를 추진하는 것이고 하나는 백화점식 학과개설을 지양하는 선에서 학과구조조정을 하는 방법이 있다. 사립대학들의 열악한 재정을 고려한다면 후자의 방식이 더 합리적이라는게 행정가인 나의 판단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교수의 밥그릇 문제로 인해 후자가 추진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설령 학과구조조정을 추진한다해도 변칙적인 유사학과 신설을 통해 실제 그 효과는 매우 미미한 형편이다.)

이러한 대학행정 수행에 대한 반발이 이제는 사회적으로도 극에 달한 느낌이다. 많은 대학 졸업생들이 실업자로 전락하고 기업은 겨우 뽑은 졸업생에 대해서도 그 교육의 성과에 대해 불신하는게 당연한 지경이 됐다. 그러다보니 재교육에 대한 기업의 비용이 추가로 지출되고 이로인한 시간적, 재정적 손실도 매우 큰 형편이다. 지성의 상징이었던 상아탑은 코끼리의 이빨만큼의 가치도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인 셈이다.

기업가의 시각에서보면 한국대학교육의 비효율성과 고루함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두산그룹의 중앙대 인수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기업가가 직접 대학을 경영하면 과연 어떤 변화가 오게될지 처음부터 상당히 궁금했었다. 과연 기업가 출신은 성과 평가에 대해 냉철했고 판단도 빨랐다. 내가 14년동안 행정하면서 느껴왔던 문제점들을 박이사장은 단 1년 만에 꿰뚫었다.그분의 인터뷰 모두를동의하는 바는 아니지만 한국의 대학들이 처해있는 문제점들에 관한 언급들은한국의 대학들이뼈아프게귀담아들어야지적들이라고 생각했다.

다음은 중앙대학교 박용성이사장 인터뷰전문.

[오늘의 세상] "대학이 문화센터냐… 학과 완전히 다시 짜겠다"



박용성 중대(中大)이사장 '폭탄선언' '학과 전면 구조조정'
"대학이 학기당 400만~500만원씩 받으면서사회 나가 밥도 못 벌어먹을 것들을 가르쳐"
19개 단과대·77개 학과싹 잊어버리고 완전히 새로 그리겠다
이번 대학평가로내년 교수평가 땐'으악' 소리가 나올 것

박용성 중앙대 이사장(두산중공업 회장)은 본지 인터뷰 도중 갑자기 백지를 꺼내 들더니 폭탄선언을 했다. "중앙대의 19개 단과대학, 77개 학과를 싹 잊어버리고 백지 위에 완전히 새로 그릴 생각이다."

미래에 필요한 학문 수요에 맞춰 전면적인 '학과 구조조정'에 나서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국내 대학 역사상 가장 큰 실험이 될 것"이라고 했다.

"내가 50년 전 대학(
서울대 경제학과 59학번) 들어갈 때는 잠사학과·광산학과가 최고 인기였다. 앞으로 50년은 산업구조가 더 빨리 변한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는데 대학은 옛날 가르치던 학과 그대로다."

그는 "그동안 대학들의 학과 구조조정은 (음식점으로 치면) '신장개업' 식이었다. 명칭만 근사하게 바꾸고 옛날 것 그대로 가르쳐왔다"며 "우리는 완전 '폐업'하고 새로 '개업'하는 방식으로 할 것"이라고 했다.

"자동차 시대에서 대학은 여전히 '마차'를 가르친다. 대학이 등록금을 400만~500만원씩이나 받고도 학생이 사회에 나가 밥도 제대로 못 벌어먹는 교육을 시키고 있다."

그는 대학 졸업생을 데려다 쓰는 기업 입장에서 볼 때 대학이 정작 필요한 공부는 안 시킨다고 지적했다.

"내가 우리 학교 교양과목 리스트를 보고 '여기가 구청 문화센터냐?'라고 했다. 골프며, 축구며, 온갖 취미생활을 다 가르친다. 학부모들이 어렵게 빚내서 등록금 냈는데 대학이 그런 걸 가르쳐 내보내? 내 양심상 그렇게는 못한다. 교양과목도 뒤집겠다."

박용성 중앙대 이사장을 인터뷰한 것은 두산그룹의 중앙대 인수가 오는 10일로 만 1주년이 되기 때문이었다. 기업인의 입장에서 대학경영을 해본 감상이 듣고 싶었고, 지난 5월 12일 발표된 조선일보·QS의 '아시아 대학평가'에 대한 반응도 궁금했다.

지난 1년간 중앙대는 대학가(街)에서 '개혁 아이콘'이 됐다. 최대 5000만원까지 차이 나는 교수 연봉제가 도입됐고, 속속 새 건물이 올라가느라 캠퍼스 전체가 온통 공사판이 됐다. 박 이사장이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소비자 관점의 대학개혁'은 철밥통으로 불리는 교수사회를 흔들어 놓았다. 반면 그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그래도 박 이사장은 양에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기업 같으면 서너 달에 끝냈을 일도, 여기선 절차가 복잡하고 명분부터 따지니 의사결정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며 "답답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학과 구조조정이 과연 교수들 간에 합의될까.

"전쟁 한번 치러야 할 거다. 교수들이 '내 과는 절대 안 된다. 다른 과 없애라'는 식으로 나오면 아예 외부 컨설팅 회사에 맡길 생각이다. 이미 국내 대학들은 입학생이 모자라 중국 학생 데려다 정원 채우고 있다. 언제까지 그런 비정상적인 걸 할 텐가. 원가(原價) 1000원도 안 되는 졸업장만 찍어줄 게 아니라 학생들에게 정말 도움되는 일을 해야 한다."

박 이사장은 대학에 와보니 급여·승진과 연결되는 교수 평가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고 했다. 교수들 반발이 워낙 거셌다는 것이다.

"이거(실적 연계 교수평가) 안 하면 나 학교 못한다고 했다. 교수들과 두어 달 씨름했다. 아무리 연구업적 나빠도 매년 월급을 올려줘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왜 제대로 일 안 하는 교수들까지 올려줘야 하나. 기업 같으면 실적 나쁜 직원 당장 월급이 깎이는데."

그는 일련의 개혁 작업 덕분에 이젠 교수들이 '내가 연구 안 하고 제대로 안 가르치면 이 대학에서 못 견뎌내겠구나' 생각하기 시작했다며 "이건 도서관 새로 짓는 것보다 더 큰 변화"라고 했다.

―교수 각자가 최고의 지성인데, 너무 밀어붙이는 것은 아닌가.

"밀어붙인 게 뭐 있나. 당신은 당신 역할, 나는 내 역할 다하자는 것이지. 급여는 조직에 대한 그 사람의 공헌을 보상하는 것이다. 생활비 대주고, 나이 쉰 살이라고 주는 게 아니란 얘기다. 지금까지 그래 왔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니 고쳐야 한다."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이 조사한 대학의 사회요구 부응도(대학교육이 경제·사회적 변화나 요구를 따라가고 있는지) 조사에서 한국은 55개국 중 53위로 거의 꼴찌였다. 박 이사장은 "회계·한문·영어처럼 사회에 나가서 쓸 수 있는 걸 더 가르쳐야 한다"며 이렇게 말을 이었다.

"이공계 출신이 상경계 출신과 현장에서 부딪치면 첫날부터 밀리기 시작한다. 이공계라고 회계를 하나도 안 가르쳤으니 들어온 돈을 왼쪽에 쓸지 오른쪽에 쓸지도 모르는 거다. 최소한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밥은 먹게 해줘야 할 것 아닌가."

그는 앞에 있던 물컵과 컵 받침을 양손에 들더니 "소비자는 이걸(물컵) 원하는데, 이거(납작한 컵 받침) 주면서 '난 이것밖에 못 만드니 여기다 물을 담아 먹든 말든 알아서 해라' 하는 게 말이 되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너무 '기업식 경영'이란 불만도 있다. 대학은 상아탑이고, 기업과는 다른 것 아닌가.

"누가 연구하지 말랬나. 기업이든 대학이든 투입한 자원에 비해 가장 큰 효과를 내는 것이 경영이다. 다를 게 없다. 학생이 400만원 냈으면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을 400만원어치 이상 전수하는 게 대학의 목표다. 누가 대학이 직업 훈련소냐며 따지기에 당신 자식이라면 그렇게 가르치겠느냐고 했더니 아무 말 못하더라."

그는 입시를 포함한 정부의 각종 대학 규제도 답답하다며 특히 '3不(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은 당연히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에선 좋은 물건 만들려고 전 세계 돌아다니며 좋은 재료 다 찾아 사는데, 대학의 원자재인 학생을 대학이 원하는 대로 못 뽑으면 어떻게 운영하나. 기여입학제도 무조건 못하게만 할 게 아니라 그 돈을 대학이 투명하게 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면 된다. 그 학생이 공부 안 하면 졸업 안 시키면 되고."

―총장 직선제 때문에 대학 개혁이 더디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건 정말 법으로라도 못하게 해야 한다. 환자가 병원장 뽑고, 공무원이 장관 임명하나. 직선제 없애고, 잘하는 총장은 수십년 동안 소신껏 하게 해야 한다. 대학처럼 설득할 대상 많고 시간 많이 걸리는 데서 임기 4년 동안 아무것도 못한다."

―중앙대는 이번 조선일보·QS 아시아 대학평가 결과(국내 22위)와 관련해 총장이 사과문을 게재하는 등 학내 파장이 컸다.

"중앙대처럼 이공계 비중이 작은 대학은 연구 중심의 평가에서 구조적으로 불리하다. 그렇다 해도 '교원 1인당 논문 수'가 경쟁 대학들에 비해 적은 것은 확실히 문제다. 교수들이 나한테 할 말이 없다."

기대에 못 미친 이번 대학평가 결과로 인해 향후 중앙대 교수평가 기준이 더 강화되겠느냐고 묻자 박 이사장은 "아마 내년 교수평가에서 무지무지하게 (강화될 것이다)…. 그때 가서 보면 아마 교수들 입에서 '으악' 소리 나올 거다"라고 했다.

인터뷰가 있던 지난 3일 오전, 박용성(69) 중앙대 이사장(두산중공업 회장)은 현장에 다녀오는 길이라며 넥타이를 매고 안전모에 눌렸던 머리를 빗으로 다듬은 뒤 취재진 앞에 섰다.

그는 원래 소탈한 스타일에 눈치 보지 않는 직설 화법으로 유명하다. 2003년 대한상의 회장을 지내며 정부·노조 등에게 쓴 말을 쏟아내 '재계의 쓴소리'로 불렸다. 국제 체육계의 인맥이 넓으며, 현재 대한체육회장도 맡고 있다. 박 회장의 스타일은 오너라기보다는 부지런한 CEO에 가깝다고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이메일을 확인하고 실무자에게까지 답장을 보낸다고 한다.

원문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6/09/20090609000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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