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베케트는 지금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시 어디에나 있다. 젊은 시절 미련없이 떠났던 조국의 거리 곳곳에 걸린 깃발마다 그의 멋부린 회색 머리칼과 우락부락한 얼굴이 보인다. 작품은 물론 일상에서도 극도로 말을 아꼈던 그가 더블린시의 여기저기 나붙은 포스터 안에서작품 속 명대사들을 말하고 있다.
‘어쨌든 자꾸 해 봐. 자꾸 실패하다 보면,실패도 훨씬 나아지거든’
프랑스에 살며 영어 대신 프랑스어로 작품을 썼고,프랑스 광복을 위해 레지스탕스에 참여해 훈장까지 받았던 괴팍한 예술가를 위해 더블린시는 그의 탄생 100주년인 13일에 맞춰 세미나 공연 전시회 등 무려 65개의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고 AP 등 외신들이 전했다.
그러나 베케트를 조국의 품에 안기 위한 이 축제에 대해 모국어를 버린 이단성을 지적하며 의문을 제기하는 시민들도 있다고 외신은 덧붙였다.
같은 날 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 묘지 등에서도 베케트를 기리는 행사가 열렸다. 모파상,보들레르,사르트르,보바르 등이 잠든 이곳의 베케트 무덤 위에 아일랜드계 프랑스인들은 조국에서 가져온 흙을 뿌렸다.
196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베케트의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 넓은 무대에 두 부랑자가 나와 연기도 아닌 동작과 대사랄 것도 없는 괴상한 얘기만 지껄이다 “아무것도 일어난 게 없다. 아무도 오지 않고,아무도 가지 않는다. 끔찍하다”로 끝난다.
연극이 브로드웨이 흥행에 실패했을 때 비평가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고 끔찍했다”고 혹평했다. 하지만 이 작품으로 베케트는 반(反)연극의 기수가 됐고,노벨상 작가 반열에 올랐다.
무대장치도,배우도,연기도,대사도 극단까지 줄이려 했던 그의 시도는 나중에 칠흑같은 어둠에 싸인 무대에 입술 하나만 달랑 움직이는 작품 ‘내가 아님’까지 치닫는 등 미니멀리즘으로 발전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베컴은 알아도 베케트는 모른다”는 유럽의 베케트 팬들의 불평에도 불구하고,베케트의 미니멀리즘은 20세기를 거쳐 21세기까지 미술 음악뿐 아니라 패션계까지 확대되고 있다.
더블린의 베케트 축제에 참가한 아일랜드 록밴드 U2의 싱어 보노는 “그의 연극을 모르는 채로 즐겼다. 확실한 건 막이 내렸을 때 내 마음도 흔들렸다는 것이다”라고 평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덕 기자
Wainting For Godot
-Samuel Beckett-
나무가 있는 시골집.
에스트라공이 땅바닥에 앉아 구두를 벗으려고 한다. 두 손으로 애쓰며 잡아당기다 힘이 다 빠져 멈추고는 가쁜 숨을 쉬었다가 다시 시작한다. 같은 동작이 반복된다. 블라디미르가 들어온다.
에스트라공 : 아무리 애써도 안 되는구먼.
블라디미르 : (다리를 벌리고 뻣뻣한 걸음걸이로 다가서면서) 나도 그걸 믿게 되는군. 넌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어. 침착해야지.
에스트라공 : 그렇다고 생각해.
블라디미르 :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네. ……다리는 좀 어때?
에스트라공 : 붓는구먼.
블라디미르 : 내가 무슨 얘기를 했더라. 아, 도둑 얘기였었지. 기억나나?
에스트라공 : 싫어.
블라디미르 : 그것이 시간을 보내는 좋은 방법이니까. (잠시 후에) 구세주와 함께 두 도둑이 십자가에 매달렸었지. 사람들이…….
에스트라공 : 누구 말인데.
블라디미르 : 사람들의 얘기가 한 명은 구원을 받았고, 한 명은 저주를 받았다는군.
에스트라공 : 무엇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는 것인지.
에스트라공 : 나 가겠어. (그는 움직이지 않는다.)
블라디미르 : 제기랄! (땅에 침을 뱉는다.)
(에스트라공이 무대 한가운데로 다시 오더니 안쪽을 들여다본다.)
에스트라공 : 아름다운 곳이로군. (난간 있는 데까지 와서 관중을 본다. 블라디미르를 향하여) 떠나자구.
블라디미르 : 그럴 수 없어.
에스트라공 : 왜?
블라디미르 : 고도를 기다리니까.
에스트라공 : 여기가 확실한가?
블라디미르 : 그가 말하길 나무 앞이라고 했거든. (둘이서 나무를 쳐다본다.) 다른 나무가 보이나?
에스트라공 : 가지가 축 늘어지지 않았군.
블라디미르 : 제철이 아니라 그런지도 모르지.
에스트라공 : 내게는 관목 같아 보이는군.
블라디미르 : 그가 꼭 온다고는 안 했건든.
에스트라공 : 오지 않는다면?
블라디미르 : 내일 다시 오지.
에스트라공 : 그리고 모레도 다시 오고.
블라디미르 : 어찌 됐든 …… 저 나무만은 ……. (관중을 향해서) ……이 늪만 있으면 되니까.
에스트라공 : 오늘 저녁이 확실한가?
블라디미르 : 토요일이라고 그가 말했지. 나도 그렇게 믿어.
에스트라공 : 만약 어제 저녁에 그가 와서 헛탕을 쳤다면 그는 오늘 다시 오지 않을걸.
블라디미르 : 한데 자넨 우리가 어제 왔었다고 하지 않았어?
에스트라공 : 나도 실수할 수 있지.
(뽀조와 럭키가 등장한다. 뽀조는 럭키의 목에 포승을 감아 묶고는 그를 앞세워 들어온다. 뽀조는 채찍을 들었고 럭키는 무거운 트렁크와 접는 의자, 음식 담는 바구니를 들었으며 팔에 외투 하나를 걸쳤다.)
뽀조 : (무대 뒤에서) 더 빨리 가라! (채찍을 휘두르는 소리. 뽀조가 나타난다.) 뒤로 돌앗!
(럭키가 짐을 전부 진 채 넘어진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그들과 상관없는 일에 말려드는 것이 겁이 나서 엉거주춤한다.)
뽀조 : 인사드립니다. 뽀조라고 하지요.
에스트라공 : 고도라고 말했어. 당신 혹시 고도 아니오?
뽀조 : 고도가 누구지?
블라디미르 : 저, 그게……그저 아는 사람이지요.
에스트라공 : 아니, 그게 아니라. 거의 모르는 사람입니다.
뽀조 : (손을 크게 벌려) 그 얘긴 그만하기로 하고. (포승줄을 잡아당긴다.) 일어섯! (잠시 후에) 송장 같은놈! (럭키가 일어나 물건을 주섬주섬 줍는 소리. 뽀조가 포승줄을 잡아끈다.) 뒤로 물러섯!
럭키 : (뒤로 돌아선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을 향하여 공손히) 여러분을 만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뽀조 : (포승줄을 잡아당긴다.) 더 가까이 왓! (럭키가 앞으로 다가선다.) 정지! 보시는 바와 같이 길이란 혼자 가면 지루합니다……. (시계를 쳐다본다.) ……여섯 시간 동안, (끈을 잡고) 사람 그림자도 못 보고 ……. (뽀조가 럭키에게 채찍을 내민다. 럭키가 앞으로 다가와서 입으로 받아 문 다음 뒤로 물러선다.)
에스트라공 : 미안하지만, 여보시오.
(럭키는 아무 반응이 없다. 뽀조가 채찍으로 철썩 친다. 럭키가 고개를 든다.)
에스트라공 : 실례합니다. 닭 뼈다귀가 필요하신지요. (럭키가 한참 동안 쳐다본다.)
뽀조 : (기뻐하며) 이봐! 필요해? (럭키 대답하지 않는다. 에스트라공을 향하여) 당신 차지요. (에스트라공이 뼈다귀를 집어서 갉아 먹기 시작한다.) 저놈이 뼈다귀를 먹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처음인데. (근심스러운 듯이 럭키를 쳐다본다.) 저놈이 아프다고 나뒹굴지나 말아야 할 텐데.
블라디미르 : 나 가요.
뽀조 : 나와 같이 있는 걸 더 참지 못하시는구먼. 아직 해가 저물지 않았으니까. 지금 떠난다고 가정해 봅시다. (셋이서 하늘을 쳐다본다.) 당신네들이 말하는 고데…… 고도…… 고뎅…… 인가 하는, (침묵)…… 적어도 당신네들에게 당장 닥쳐올 미래를 손으로 쥐고 있다는 그 친구와 만날 약속은 어떻게 되는 거지?
블라디미르 : 그걸 어떻게 아셨지요?
뽀조 : 됐어! 그가 다시 나에게 말을 거니 이러다간 정말 둘이서 정이 들고 말겠는걸.
에스트라공 : (손가락으로 럭키를 가리킨다.) 왜 늘 짐을 지고 있는 거지? (숨을 헐떡이며 등을 굽히는 사람의 흉내를 낸다.) 어째서 그럴까?
뽀조 : 난 알고 있지. 어째서 그가 좀 편한 자세를 취하지 않는지. 주의 깊게 검토해 봅시다.
블라디미르 : 잘 들어 보게!
뽀조 : 저놈 속셈은 자기의 처지를 동정하게끔 해서 내가 자기를 떼어 놓는 것을 포기하도록 하자는 겁니다. 아니, 그것도 꼭 맞는 대답은 아니고.
블라디미르: 쫓아버리실 작정인가요?
뽀조 : 쫓아 버릴 수도 있지만, 불문곡직하고 내 성품이 착해서 저놈을 셍소뵈르 시장에 끌고 가서 무엇과 바꿀 생각이오. 제대로 하자면 죽여 버려야 될 거요.
(럭키가 운다.)
에스트라공 : 저 사람 우는군.
뽀조 : 눈물을 닦아 주면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덜 날 거요. 집으시오. (에스트라공이 손수건을 집는다. 에스트라공이 주저한다.)
에스트라공 : 개 같은 놈! 재수 더럽게 없다! (바지를 올려 입는다,)
뽀조 : 내가 무어라고 말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한 말 중에 진실은 하나도 없습니다. (일어나더니 가슴을 치며) 내가 고통을 당하는 사람 같아 보입니까? 내가? 잘 보십시오! (주머니를 뒤적인다.) 내 파이프를 어떻게 했더라?
블라디미르 : 밤은 영영 오지 않으려는지……. (셋이서 하늘을 쳐다본다.)
뽀조 : 당신. 먼저 떠날 의향이 없으신가?
에스트라공 : 아시겠지만…….
뽀조 : 아무튼 당신이 잘 아는 그 작자와 내가 약속이 있었더라면 포기하더라도 한밤중까지 기다렸다가 포기할 거요.
블라디미르 :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거지.
뽀조 : 지루하시지?
에스트라공 : 약간 그렇다고 할까요.
뽀조 : 당신은 어떻소?
블라디미르 : 신나는 편은 못 되지요.
(침묵, 뽀조는 내적인 고민에 사로잡혀 있다.)
뽀조 : (럭키에게) 이 망할 놈, 춤추란 말이야! (럭키가 트렁크와 바구니를 땅에 내려 놓고 약간 앞으로 다가서더니 춤춘다. 멈춘다.)
에스트라공 : 이게 전분가?
뽀조 : 더 계속!
(럭키가 같은 동작을 되풀이하더니 멈춘다.)
블라디미르 : 그가 피곤한가 보죠.
블라디미르 : 춤추기 위해서.
에스트라공 : 아무 일도 안 일어나고, 아무도 안 오고, 아무도 안 떠나고, 참 지긋지긋하군.
블라디미르 : (뽀조에게) 그에게 생각하라고 하시지요.
뽀조 : 그놈에게 모자를 줘요, 줘. 그놈은 모자 없인 생각할 수 없답니다.
베케트씨가 올해로 나이 백살이 되었다는군.
제삿상이라도 한 상 푸짐하게 차려드려야하는데 흠..
[고도를 기다리며]
이 작품,
아무리 대본을 읽으려해도 안읽혀졌었는데
연극을 직접 보고나니
왜그리 가슴이 뭉클해지던지..
결국 내 마지막 논문의 주제가 되었구려.
내 글을 심사하시던 교수님 한분 그러셨지.
"결론이 너무 비관적이지 않으니?"
슬픔을 이기는건 슬픔뿐이라는걸
그 분은 모르셨던거지요.
실컷 울어야 가슴이 시원한 법인걸
알고도 모른척 하셨거나...
난 베케트씨의 주제가 그렇게 비관적인게 좋았다우.
슬픔과 절망을 즐기는 법을 동시에 알려주고 있었거든.
마치 속삭이듯 소근거리듯 먼지날리듯 잔가지에 바람걸리듯
알듯 모르게 미소짓듯
베케트씨는 희망의 메시지를
그렇게 던져주었던거라고 생각해...
난 그래서
[고도를 기다리며]가 전혀 슬프지 않았다우
내가 비록 거의 울뻔했지만서도
그건 분명
아주 유쾌한 연극이었단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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