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글씨를 참 잘 쓰는 편이었다.
그 꿈 많던 사춘기 시절,
친구들의 연애편지를 대필해주곤 했으니,
문장력도 꽤나 그럴 듯 하긴 했었나부다.
나 자신,
편지를 꽤 즐겨 쓰기도 했고,
여자 뿐 아니라 나보다 두세살 위의 군인아저씨까지 반하게 했으니
나름대로 글로서 사람홀리는 실력(?)이 있었던 것도 같다.
그러던 내가
석사논문을 쓰던 해에 아버지의 크신 은혜로 486컴퓨터를 가지게 되었다.
그때부터였을게다.
내가 글씨를 다듬지 않게 되었던 것은...
누군가는 컴퓨터로 글씨기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글씨 모양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
자판을 두들겨 문장을 만들어가는 PC작업은
특히나 악필이었던 이들에겐 더없는 축복이었을게다.
나는,
자판의 리듬감과,
자판을 두들길때의 그 비인간적이기까지 한 기계음에
꽤나 매혹당했던 것 같다.
인간적인듯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가식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던 손으로 글쓰기와 달리
자판을 두들기는 일은 꽤나 정직한 작업이었다.
그 부드러우면서도 정직한 타자음에 맞춰 손가락을 움직이다보면
문장이 춤을 추듯 리듬감을 타기도 한다.
70여페이지의 논문을 써갈 때
글이 안풀려 담배 두갑을 태워버리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그때마다나를 일으켜세운건
바로 이 LETTER들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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