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캣생각

봉순이 언니

길을 묻는 길냥이에게_the캣 2005. 10. 1. 02:08

참으로 오랫만에 소설책을 읽었습니다. 대학원을 마치고 근 6년간 손에 집었던 책 권수라곤 기껏해야 다섯권정도 되었을까..그중에서도 첨부터 끝까정 다 읽었던 책은 한 권밖에 없었던걸루..
후후..창피한 일이죠..도대체 내가 읽었으믄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다구 질렸단 표현을 써가믄서 책을 멀리했던가 생각하믄 참 부끄럽네요..

공지영 작가는 ..첨에 맞닥뜨렸을땐 별 반 기대없이 ..우연히 만난 작가였습니다. 그런데 화려하지 않으면서 빠르게 읽혀가는 문체가 재미있었구 또 가볍지 않으면서도 결코 무겁지만은 않은 주제 또한 부담없이 읽혀서 곧 작가랑 친숙해지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여류작가였지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정도는 전에 읽었었습니다. 그쪽 부류에선 대개 여성에 관한, 이땅을 살아가는 여성삶의 부당함과 고단함에 대한 얘기들이 주된 글방향이었지요. "봉순이언니"도 물론 여성이 주인공이면서 여성삶이 주제로 나오고있지만, 이전과 다른점은 작가의 행위에 빗댄 주인공의 부질없어 보이는, 그러나 그래도 부단히 희원할수 밖에 없는 '희망' 에 관한 이야기란 점이었습니다.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는 짱아라는 주인공의 눈을 통해본 식모 봉순이언니의 불행하고 고단한 세상살이가 주된 이야기의 구조입니다. 봉순이언니라는 여자는 불행한 출생만큼 소설속에서 기구한 운명을 살아가는데,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작가는 봉순이란 인물이 천성적으로 가진 낙관성과 부질없는 희망품기에서 찾고 있습니다.

"며칠 전 전철에서 한 여자를 보았어. 내 맞은편에 앉아 더러운 보따리를 끼고 졸고 있는 여자였는데.... 가끔 잠에서 깨어나 여기가 어딘가 둘러보는 거야. 내 생각엔 아마 그 여자가 좀 정신이 나간 것 같았거든...냄새가 심하게 났는지 옆에 앉은 아가씨가 코를 싸쥐고 불쾌한 얼굴로 일어서더군....(중략)...그동안 전철은 내가 내릴 곳에 도착했어. (중략). 그런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다가 문득 돌아봤을 때 놀랍게도 그녀가 날 바라보고 있었어. 설마 하는 눈빛으로 ... 희미한 확신과 놀라움과 언뜻 스치는 그토록 반가움... 나는 돌아보지 않았어. 어서 전철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내려섰지. ..(중략)..그런데 그런데 날 더욱 뒤돌아볼 수 없게 만들었던 건, 그건 그 눈빛에서 아직도 버리지 않은 희망...같은게.... 희망이라니, 끔찍하게... 그 눈빛에서... "

이 부분은 여주인공인 짱아 자신의 삶도 그녀 자신 '내인생의 첫사람'이라 부르던 봉순이언니를 닮아 그리 평탄치 않았던 상황에서(이혼소송중..)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우연히 만난 봉순이언니를 애써 외면하는 장면입니다. 결국 봉순이언니랑 자신의 삶이 닮아있으며,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막연히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봉순이 그녀에게서 발견하고 당황스러워하는 장면입니다. 이런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희망의 눈빛은 결국 공지영 작가 자신이 글쓰기 행위랑도 닮아 있습니다.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얼마간 귀찮음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희망은 수첩에 약속시간을 적듯이 구체적인 것이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것처럼 구차하기까지 한 것이지만, 나는 그저 이 길을 걷기로 했다. 왜냐구 묻는다면 할말이 많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까 그건 내가 작가라서가 아니고, 내가 고상한 인간이어서는 더더욱 아니고 그냥 그것이 뭐랄까, 내 적성에 맞기 때문이라고 대답할밖에.
비록 너무나 짧은 엎드림으로부터 나온 상투적인 결론이라 해도, 나는 이 붓을 멈추지는 않으리라. 누구를 괴롭히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듯이, 누구에게 잘보이기 위해 살아가지도 않으리라. 나 자신을 믿고 나 자신에게 의지하며 그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하면서, 고이는 내 사랑들을 활자에 담으리라. 가슴이 아플까 봐 서둘러 외면했던 세상의 굶주림과 폭력들과 아이들을 이제는 오래 응시하면서.(작가의 말 중에서)"

봉순이언니의, 짱아의, 작가의 '희망'은 비록 무모하고 잇속없어 보이는 듯해도 세상을, 사람을 따뜻하게 보듬어 안으려 하는 것에 큰 의미가 있는 것처럼 저에겐 읽혀졌습니다.
여러분들도 천천히 시간내어 읽어보시길...
유년시절의 추억들과 어릴적 동네길을 더듬으면서 주변을 스쳐간 많은 사람들중 유난히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말투와 손짓, 발짓 들을 떠올리면서 세상의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을 '회상함'을 통해 자신의 현재 생(生)을 반추해 보시길......

'더캣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데미안  (0) 2005.10.01
괴물  (0) 2005.10.01
변화를 즐겨라  (0) 2005.10.01
인간에 대한 예의  (0) 2005.10.01
가을 날의 동화  (0) 2005.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