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캣생각

괴물

길을 묻는 길냥이에게_the캣 2005. 10. 1. 02:09

오늘 저는
세이안에 마련된 대구지하철참사 피해자 위로 커뮤니티를 다녀왔습니다.
사이버상으로나마 헌화하고 하얀 리본을 받아서 달고 왔습니다.
슬픔으로도 분노로도 어찌할 수 없는 허망한 참사들 속에서,
참으로 난감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외수는 제가 고등학생때 "꿈꾸는 식물""들개"등의 중단편을 통해
익히 그 작가적 역량과 문학적 감수성을 느꼈던 바였습니다.
그때의 충격과 감동을 이어갈 수 있을거란 어느정도의 예상을 가지고
그가 최근 발표한 "괴물"을 읽었습니다.
읽고난 느낌은...
처음엔 실망?, 나중엔 계시록적 주제다? 로 표현하겠습니다.

실망했던 이유는,
오랫만의 신작 장편소설인데 처음의 치열한 문학적 감성과 꼼꼼한 구성 대신에
과장스런 문체와 허술한 대화구성 솜씨(이를테면 초등학생의 어투가 지나치게 작위적인 경우 등)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스토리중심으로 흘러가 만화를 보듯 빠르게 읽히는 것도
이외수씨의 기존작품들과 비교할때는 생소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물"에 대해 흥미본위의 3류작이란 평가를 보류해야 했던 이유는
대구지하철 참사 때문이었습니다.

"괴물"에 나오는 주인공은 애초부터 기형아로 태어난 저주받은 인물로
도벽이 심했으며 결국에는 극단적 포악함과 잔인한 악마적 속성을 드러내는
비정상적인 사람입니다.
좀 과장되게 인물구성을 끌고간 면이 없지는 않지만 암튼, 이 사람은
도를 닦아서 나중에는 사람을 죽이고 시체를 간음케 유도하는 이상한 바이러스를 사람들에게 유포해서 세상을 극도로 혼란에 빠뜨리게 됩니다.
이 인물이 처음에는 비현실적이고 과장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지하철 참사사건을 저지른 범인을 지켜보면서 생각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좀 우습지만, 이 사람도 결국 저 괴물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지른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연상이 과연 허무맹랑한 것일까요?

이외수 작품 속의 '괴물"은 사실
실존(하거나 또는 실존가능한)인물이 아닙니다.
이 '괴물'은 바로 나이거나 당신일 수 있으며,
기생충처럼 사람들 각각의 마음속에서 기생하면서 언제나 뛰쳐나올 틈을 노리고 있는
악마와도 같은 것입니다.
이 '괴물'은 바로 우리들 내부에 잔존하는
'나쁜 마음''이기적인 마음''자기를 해치며 나아가서 가족과 이 사회를 망치는 증오심'을
인물화시킨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외수의 "괴물"은 이런 '나쁜 마음'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으며
이로인해 우리사회가 지옥처럼 될수도 있음을 은연중에 경고하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도저히 이성적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대구지하철 참사사고처럼 말입니다....
(대구지하철참사의 희생자들은 이 '괴물'에 의해 죽어간 사람들처럼 이유도 알지 못하고 죽어갔습니다.)

이런 이유로 처음엔 삼류무협지로까지 생각되었던 이외수의 "괴물"이
현대사회의 병폐를 만화적으로 표현한 일종의 계시록적 작품으로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00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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