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구조조정으로 인해 천막강의실이 설치되었다.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우리나라 대학사회의 현실 그자체였다.
같은 대학 인문학도 출신으로서
마음이 착잡했다.
정진홍씨의 지적처럼 인문학은 '통찰'의 학문인데
우리 학교에는여전히 '불찰'의 인문학들이 존재한다는게서글펐고
사회적으로인문학의 기본 본질에 대한 이해없이
경제적 논리로만 학과폐지를 밀어부치는 현실에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일이 이지경까지 오게된 것은 분명
연구와 교육을 게을리한 학과교수들의 잘못이 제일 컸다.
대학본부의 지원이 부족했다고 말하는건
솔직히 비겁하다는게 내 생각.
나는 사실
인문학이 없어져서는 안된다는생각을 가지고 있다.
학문적으로서뿐만 아니라 경영, 심지어는 정치에까지 통용되는 철학은
인문학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영철학없이, 정치철학없이 사람이 존경받고 나라가 잘되는 법은
지금껏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학에서 일어난 이번 사태는
결론적으로 잘됐다고 본다.
무능하고 인문학적소양을 가르치지 못하는 교수가 있는한
해당학과는 결코 인문학적 성과를 거둘 수가 없는 법.
게다가 아이들을 살리는게 급선무였다.
경쟁력없는 학과를 나와 진로도 없고 방향도 없는 사막같은 길을 걷게될 아이들에게
다른 대안을 줄 수 있는 결정이라고 봤고
해당학과의 많은 아이들도 개별적으로 그것에 대해 환영한다고 했으니까,
이번 일은 차라리 잘된 결정일지도 모른다.
하루빨리 한국 대학의 인문학이
통찰의 학문으로서의 제역할을 하게되기를 기원한다.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인문의 힘으로 위기 돌파를
# 3년 전 ‘인문학의 위기’라는 소리가 높을 때, ‘메디치21’이라는 인문학 조찬강의를 시작했다. 대상은 일반시민이나 대학생이 아니라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었다. 현실적으로 한국 사회를 이끌고 있는 기업집단의 수뇌들이 인문학의 가치를 몸으로 느끼면 자연히 인문학과 인문학도들을 우대할 수 있게 되고, 그러면 ‘인문학의 위기’ 운운하는 것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처음 108명으로 시작한 인문학 조찬강의는 급기야 700여 명이 모이는 매머드급 강좌로 변신했다. 그 사이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의 부흥’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 우리에게 인문학이 요청되는 까닭은 ‘통찰의 힘’을 확보해야 할 절실함 때문이다. “통찰은 ‘통찰(洞察)’이면서 동시에 ‘통찰(通察)’이다. 통찰(洞察)은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보는 것을 말한다. 인사이트(insight)다. 아울러 통찰(通察)은 곧 통람(通覽)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훑어 두루 살펴보는 것이다. 오버뷰(overview)다. 결국 ‘통찰의 힘’은 바로 ‘통찰(洞察)’과 ‘통람(通覽)’의 융합이며 인사이트와 오버뷰의 시너지다.”(정진홍,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서문)
#그런데 그 어느 때보다도 통찰의 힘이 절실한 때가 요즘이다. 오는 11일은 외국인 채권 만기 도래분이 몰려 있어 이른바 ‘9월 위기설’의 D-데이로 불리는 날이다. 하지만 정작 9월 위기설은 그 실체가 모호한 온갖 설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일종의 위기관념의 총집합체다. 이럴 때는 ‘타초경사(打草驚蛇)’ 즉 풀섶을 쳐 뱀을 놀라게 한 후, ‘정문일침(頂門一鍼)’ 즉 정수리에 일침을 놓아야 한다. 자고로 경제는 심리다. 인문의 힘은 이러저러한 분석과 관측에 매몰되거나 휘둘리지 않고, 통람하고 통찰해서 분명한 어조로 방향을 설정하며 드라이브시키는 실질적인 위기 돌파의 역량이다. 그것이 살아있는 인문학의 위력이다.
# 인문의 힘은 사태의 본질을 ‘평면적인 수치’만이 아닌 ‘입체적인 실체’로 꿰뚫어 볼 수 있게 하는 힘이다. 경제는 결코 수치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시장은 공감(共感)의 장이다. 사람들의 느낌이 작동하는 큰 마당이다. 특히 오늘의 디지털화된 경제는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즉시 자신의 손끝 하나로 컴퓨터를 클릭해서 그 마음이 곧장 장세에 반영되는 초감각적 경제다. 따라서 마음이 동요하고 심리가 움직이면 주식장은 춤을 추고 시장은 요동친다. 결국 위기설을 잠재우고 위기를 극복하려면 무엇보다도 심리전에서 이겨야 하며 이기려면 시장에 믿음을 줘야 한다.
# 물론 그 믿음은 맨입으로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신뢰라는 닻을 내려야 한다. 신뢰는 원칙에서 나온다. 원칙이 확고할 때 신뢰는 뿌리를 내린다. 사실 9월 위기설은 그동안 원칙 없이 흔들린 정부의 자업자득인 측면이 강하다.
# 대통령이 9일 밤 국민과의 대화를 한다고 한다. 그에 앞서 법과 제도를 몰라 소득세 환급신고를 하지 못한 취약계층 139만 명을 찾아내 세금 711억원을 되돌려준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추석을 앞두고 민심을 잡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다. 하지만 정말 대통령이 경제성장 드라이브를 다시 걸고 싶다면 법령과 수치만이 아닌 인문학적 파워를 발휘해야 한다. 이를테면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는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시 한 구절을 읊을 수 있는 여유와 시야가 대통령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그 시 한 구절이 국민으로 하여금 다시 팔 걷어붙이고 나서게 하는 기폭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진홍 논설위원
중앙일보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com/center/journalist.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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