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캣생각

마음을 찍어내는 프린터가 있었으면 좋겠다

길을 묻는 길냥이에게_the캣 2008. 7. 29. 23:08

컴퓨터로 글(나의 경우 잡문)을 쓰는 일은 연필로 생각나는대로꾹꾹 눌러썼다가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쓰던 것에 비해 매우 간단하고 간결했고 경쾌했으며 마음 속에서 흘러가는 것들을비교적자연스럽게 따라 써내려갈 수 있어서, 비록 하찮은 내용들일지라도 꽤나 유쾌한 소일거리가 되어주었다. 그런데 요즘 컴퓨터로 글쓰기의 가벼움에 점점 싫증이 나고 있다. 마음 속의 것들을 곧잘 따라가기는 하는데, 오로지 따라가는 일에만 집중이 되어 주변의 풍경들을 놓쳐버리는게 아닌가 싶었다.

길에는 분명나무도 있고 집도 있고 잡초도 있고 돌멩이도 있고 풀벌레들이 있고 땅 속에는 우리가 자세히 알아볼 수 없는 무수한 생물들이 살고있다. 그것들은 어느 한 순간 길을 가는 이에게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같은 풍성한 감동을 주게 되며 여행자의발길을 가볍게하고심부름가는 어린아이의 감성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며 글을 쓰는 작업과 비교하면 그 내용이 저절로 풍성해지게 해주는 그런 요소와도 같았다. 컴퓨터로 글(나의 경우 잡문)을 쓰는 일은 이 모든 풍경들을 바람이 스쳐가듯 무심히 흘려보내며 앞서가는 사람의 발 뒷꿈치만 바라보면서 가는 것처럼생각되어 가슴이 헛헛해졌었다.

어쩌면,내가 도착해야할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발꿈치만 보이는 선행자가 아니라, 내가 지나가는 길 옆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진실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 글(나의 경우 잡문)을 쓴다는 것은,쓰는 이 자신이 의식하던 안하던 간에, 결국은 쓰는 이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고 진심을 읽어내고자 하는 일련의 과정일 것이며 그것을 통해스스로 알지 못했던, 혹은 스스로 의식하지 못했던 어떤 사실(진실)에 접근한다는 목적을 내포한다고 볼 수 있는데, 문제는신뢰할만 것이 못되는 인간의 주관이 중간에 개입되면서 그 모든 방향성을 잃게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진지하고 신중해야할 여정을 쉽게 썼다 지울 수 있는 연필로 휘갈겨쓰거나 그려보는 메모지 안의 대단히 간결하고 황량한 스케치 정도로 전락시키기도 한다는 거다.

현대는 엑스-레이니 엠알아이I니 하는 의료장비들이 보이지 않는 사람 몸 안의 상태와 움직임들까지 샅샅이 점검하고 그 시시각각의 상태를 하나도 남김없이 찍어서 그 결과를외면적 수치로 보여주고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최종판정까지 보여주는 그런 세상이다.그런데도 사람의 마음을 자동으로 찍어내고 수치화하고 최종 결과까지 알려주는 그런 기계는 왜 아직 없는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인간의 주관이라는게 알고보면 얼마나 부정확하고 신뢰할만한 것이 못되는지는 모든 사람들이다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닌가. 차라리 그냥 있는 그대로 마음을 찍어서 그대로의 상태를 활자화해주는 그런 기계 하나 누군가가 만들어낸다면 나의 이 많은 번민과 불분명한 고통의 실체들에 대한 좀더 정확한 관찰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다소 생뚱맞지만 이런 이유로 사람의 마음을 찍어내는 프린터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실제 발명 여부의 가능성은 반반이었다. 세상엔 내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많은 일들이 현실로 구현되고 사실로서 발생하는 일이 종종 있어왔기에 이런 과히 혁명적인 프린터의 발명 또한 먼 미래의 가능성으로 오십프로를 주고 싶다.

꿈을 찍는 사진관도 생기고 마음을 찍어내는 프린터기도 빨리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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