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노트 139

개같은 내인생2

어렴풋이 세상에 대해 눈뜨기 시작했던 때가 아마 10살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남보다 가난하고 그래서 내게 자석필통이랑 소세지반찬은 어림도 없는 소원이란걸 알고 있었다. 그것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학교에서 늘 혼자였던 이유가... 누군가의 생일파티에 불려가는 일도 없었고 손을 들어 의견을 발표하는 일은 더더욱 어려웠다. 선생님이 강제로 교과서 읽을 사람을 지목하면 책을 소리내어 읽는 내내 숨이 가빠져서 내 목소리는 자꾸 끊어졌고 두 팔과 다리는 사시나무처럼 떨기 일쑤였다. 누가 날 부르거나 나를 잠시동안 쳐다보기라도 하면 얼굴이 붉어지고 당황스러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었다. 여전히 그 시절을 떠올리면 선생님께 말도 못하고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참다가 교실바닥에 흘려버린 오줌냄새가 나는 것 같다...

개같은 내인생1

스무살적 일이었다. 예비군훈련에 불참해서 벌금고지서가 나온 선배의 부탁으로 담당자를 만나러 동사무소에 갔었다. 담당자와 이런저련 얘기를 하다가 담당자가 보던 서류를 펼쳐놓고 잠시 자리를 비웠었는데 그때 누군가가 내게 다가왔다. 내 앞에 펼쳐져있는 서류를 보더니 다짜고짜 나를 몰아세우더라. 당신 이게 무슨 짓이냐고, 누구길래 이런 서류를 함부로 훔쳐보냐고 눈에 심지를 돋우며내게 고함을 쳤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난 순간 너무나 어리둥절했고,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음을 깨닫고나선 그저 숨고만 싶어졌었다. 내가 진짜 무슨 잘못을 했나 싶었다. 찬찬히 생각해보니 이 모든 일의 시작이 내 앞에 놓여져 있던 그 서류때문이었음을 알아차렸다. 민원인이 보아서는 안될 서류였었나 보다. 사실 그것 때문이었..

소설같은 이야기2

만약 당신에게 영화같이 믿기 힘들 일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그 영화같은 일이 벼락부자가 되는 거냐구? 예쁘거나 멋진 이성을 만나 꿈같이 사는 일이냐구? 애인 앞에서 근사하게 깡패들을 물리치는 일이냐구?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럴 수만 있다면 더이상 바랄게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영화같은 일이란게 모두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영화에는 멋진 남자, 예쁜 여자, 부자들이 많이 나오지만 화면 전체가 핏빛으로 물드는 일도 빈번하지. 그리고 정말 유감스럽게도 실제 인생은 핏빛 스크린에 가깝다. 아주 피처럼 붉지는 않더라도 잿빛 콘크리트 바닥길이 비춰지는 화면처럼 단조롭고 지루한 경우가 훨씬 많지. 세상 일이란게 그런거 같다. 곧 닥쳐올 불행을 예감하지 못하고 늘 행복해지는 꿈만 바라보면서 사는게 인생이라는 거지. 공포영..

# 박제(剝製)가 되어 버린 이야기

내가 공부할 때 얘기를 해볼까 해. 스물 다섯부터 두 해 정도의 일이지. 그때는 정말 열정적인 시절이었어. 마지막으로 해보는 공부였기 때문에 누구보다 진지하고 절박했었지.난 그때 내가 정말 천재라고 말하고 다녔었어. 처음엔 다들 비웃었었지만 결국 몇가지 사건(?)들로 인해 조금은 나를 인정해주었었어.정말 난 못말리는 영문학도였던 것 같아. 참 많은 사고(?)들을 치고 다녀서 늘 사람들 대화의 주제가 되곤 했었지. 그래도 사람들한테 미움을 덜 받았던건 그들이 내게 꽤 도움을 받기도 했었거든. 이를테면 난 그때 도서관에서 거의 살다시피해서 전공관련 책들 뿐만 아니라 관련된 사회과학 서적들의 위치들을 낱낱이 파악하고 있었지. 그래서 사람들이 발표나 논문준비 등으로 관련 책들을 빌려야할 때마다 나를 찾아다녔어...

소설같은 이야기1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 중에는 사실인 것과, 사실이 아닌 것들이 있다.형이 죽었다는 소식은 나에게 처음에는 사실이 아닌 것처럼 들렸다가 나중에야 사실로서 인정해야만 하는 그런 종류의 사건이었다. 사실이 아닌 것처럼 생각된 이유는사실로 믿기에는 너무나 어이가 없었고 감당하기가 어려운 소식이었기 때문이었을거다.안개가 자욱한 밤길을 달려 내게 소식을 전한 여동생에게 가는 길에 내내 아내가 울었고, 아내의 울음 소리를 들을 수록 그의 죽음은 점차 현실이 되어갔다.한 순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꿈같이만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허공을 휘휘 저어봤다.그런 내 모습이 너무나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집에 도착했을때어머니는 아버지를 붙잡고 형의 이름을 부르며 대성통곡을 하셨다.여동생은 자기 방..

어떤 중심 (부제 : 미친사랑)

1.사실 모든 사람이 조금씩은 정신을 앓는다. 그러나 그래도정상이라고 말해지는 사람은 이 약간의 정상적이지 못함을 개선하려 애쓰는 사람일 것이다. 중심을 잡는다는 것은, 삶이 비틀거림의 연속임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애씀이 벅차다는 걸 어느만큼은 알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계속 자기의 중심 안에서 비틀거리는 사람이 내 주변에 있다. L씨. 그는 서른넷의 여자 대학원생으로 1994년에 입학했다. 강의실에서 혼자 누워 노래부르던 그녀와의 어색했던 첫대면, 개강파티에서의 불규칙한 음정으로 에릭 클랩튼의 노래를 부를 때만 해도 사람들은 지금처럼 그녀에 대해 심각하지 않았었다. 수업시간에 어설픈 맑시즘이론으로 퍼부어대는 문제제기도 열성적이라는 말로 대신하면서 별로 문제가 있다고 보지는 않았었다..

2004/05/11

말은 참 모호하다.. 특히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말은 모든 관계를 해명해주지 않는다.. 어떤사람과는 말로써 모든것이 해명이되지만 어떤 사람과는 말로써 해명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가장 일반적이고 가장 보편화된 의사소통방식인 말로써 규명이 되지 않는 관계가 있다.. 이제 내나이 서른중반이고 결혼도 했고 이쁜 딸아이도 있으니 이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은 아닐게다. 뭐랄까... 좀더 근원적이고 좀더 근본적인.. 좀더 본질적으로 사람사이를 규명해주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잡힐듯, 보일듯, 어렴풋이 느껴지는 그 무엇... 이것이 묘하게도 서른중반의 나이에 나와 타인과의 관계를 이끈다. 가까운듯 가깝지 않은.. 그렇다고 완전히 남남은 아닌 관계의 편안함이 요즘의 나를 이끌고 있다. 물안개처럼 피어나 나와 타인을 ..

블루노트 2005.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