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캣생각

공지영을 다시 만나다

길을 묻는 길냥이에게_the캣 2006. 1. 5. 23:44

공지영,, 그녀를 다시 만나다

미친듯이 책을 껴안던 시절이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미칠것만 같던,

열정이 넘치던 시절,

미친놈처럼 책만 보면 덤벼들었었다.

글쟁이들이 원래 감성이 남다른데다

업으로 삼을 만큼 그 감성을 표현해내는 솜씨가 대단해서

내면의 뜨거움때문에 금방이라도 타버릴 것만 같던 나의 정신을

송두리째 가져가 버리곤 했었다.

그리고 10년..

다 타버리고 재만 남은 것 같았다.

소설 속 글 한줄 한줄에 미친듯이 몰입하고

그 표현 하나하나에 뜨겁게 반응하던 나의 열정이

한순간에 다 식어버린 것이었다.

그것은 책읽기의 종결로 이어졌다.

밥상머리에 앉아서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던 나는

어느 순간서부터인가 책과 멀어져갔고,

어찌어찌해서 소설책 하나 손에 잡더라도

그 소설을 읽는 행위는

암벽을 오르는 것보다 더 숨이 차오르게 만드는,

아주 고통스러운 경험이 되었었다.

그러던 때에 공지영을 만났다.

내가 공지영을 처음 만난 것은,

그러니까 그 때, 한참 열정에 차올랐던 그 젊은날에

[인간에 대한 예의]를 통해서였다.

참 도전적인 제목이었다.

그 시절에 내가 만났던 공지영은 무척 예민하고 감수성이 특출났던

그런 젊은 작가였다.

그녀는 그러니까 당시의 나에겐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최영미시인과 함께

또래의 비슷비슷한 감성을 지닌 젊은 작가중 하나였던 셈이었다.

한동안 잊었던 그녀를 다시 만난건,

내가 공부를 마치고 소설읽기와 멀리하게 되었을 때

그녀의 소설 [고등어]을 통해서였다.

그녀의 소설들은 그녀만의 감성과 의식이 유려한 글로 잘 어우러져 있어서

읽고나면 괜히 가슴이 뿌듯해지는 느낌을 주었다.

더구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도 풍부해서

매우 재미가 있었다.

- 개인적으로는[봉순이]가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젊었던 한때 이후에 나는

그녀의 소설들 외에는 지금껏 책읽기에 시큰둥해 있었다.

그러다가 요즘 그녀를 다시 만났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친지분의 병문안을 갔던 병원 안 편의점에서 처음 맞닥뜨렸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그녀의 예전 소설들의 제목을 닮아서

그 자체만으로도

나의 머리속 상념들이 어지러이 흩어짐없이 한곳으로 집중되게 하는

그런 마법과도 같은 효과를 냈다.

또한 병문안이라는게 워낙 의례적이고 진부한 말들을 나누는 자리인지라

무의식적으로 좀더 특별한-진실한-언어들을 갈망했었고,

그래서 그렇게 오랫동안 무관심했던 소설책에 손이 갔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아무튼, 그렇게 공지영을 다시 만났다.

역시 녹록치 않은 글솜씨가 여전했다.

그런데 내가 예전에 알던 공지영은 거기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그녀가 말하고자 했던 <행복>은

소설속 문유정이가 그토록 진부하게 생각했던 진부함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진부함이 싫다고 몸부림치던 문유정이가

자기보다 더 불행했던 인물-사형수 윤수-를 만나고

그로 인해 비로소 자기만의 불행에서 벗어나

진정한 인생의 가치와 행복의 의미를 찾는다는..

소설 속 인물들의 고통과 치열한 내면탐구를 통해

그러한 고통들을 초래한 주원인인 사회를 겨누던 그녀의 [무소의 뿔...]과 같던 펜촉이

너무나 평범하게 무디어진건 아닌지...

더구나 다큐멘터리 코멘트와 같은작가후기는

정말 끔찍했다.

그녀도 결국

어느정도 타성에 젖고

안락함에 젖어버린 나이를 먹었단 말인가..

그래도 내가 그녀를 아주 미워할 수 없는건,

그녀의 변화가 내 세대의 변화일 것이고

존재라는게 쿤데라식으로 그처럼 보잘 것없이 가벼운 것이고

인생이라는게 연극작품 [우리읍내]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본질적으로보편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다들 특별해지기를 원하지만

사실인즉,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간다는건 진정 행복한 일일 것이다.

이 따분하고 고리타분한 세상이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현실의 본모습이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 무료하고 진부한 세상이 진실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나는 내가 소위 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한 이별들을 했었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내가 그 사실들에 계속해서 상처입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들의 행복했던 시간] 中에서 유정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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