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캣생각

가을 날의 동화

길을 묻는 길냥이에게_the캣 2005. 10. 1. 02:01

남자는 가을을 타고 여자는 봄을 탄다고 합니다. 같은 여자라도 아줌마는 가을을 탄다고합니다. 이 무슨 변화란 말입니까... 남자인 저로서는 알 듯 하면서도 잘 이해가 가지 않더이다.

제 주변에 동갑인 친구가 있습니다. 인터넷 음악방에서 만난 그 친구는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 많이 외롭다고 합니다. 쓸쓸하다고, 혼자서 술 한 잔 하겠다고 합니다. 평소 명랑하고 활달하던 그 친구에게 이러한 변화는 또 무엇이란 말입니까.

가을은, 참으로 가을은 조석과 한낮의 날씨 만큼이나 유별나고 변덕스럽습니다. 춥다고 두꺼운 옷을 꺼내입었다가 벗었다가 다시 입기를 반복해야 합니다. 그 때문일까요? 가을엔, 참으로 가을엔 많은 사람들이 감기 걸리듯 그 친구처럼 시름시름 앓더이다.

아마두 올 가을 초엽이었을겁니다. 저 또한 가을타는 남자처럼 알 수 없는 욕망과 끊임없이 부딪치며 지쳐가던 때였습니다. 참으로 매일매일의 일상들이 하찮아 보이더이다. 그 병은 참으로 중병이어서 나라는 존재의 무게가 다른 모든 것들을 압도하였습니다. 이 병을 털고 빨리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서른 셋이라는 나이에 새롭게 일을 시작하였던 것인데, 그것은 바로 윈앰프 방송이었습니다.

윈앰프 방송은 참으로 나에게 활력을 주었고 가을의 쓸쓸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습니다. 늘 단조롭던 일상에서 벗어나 매일매일 새로운 사람들과 대면하고 사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참으로 놀랍더이다. 그렇게 보잘 것 없어 보이던 나의 소소한 일상들이 그들에게 즐거운 이야깃거리가 된다는 것이.

나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변화란 것이 참으로 소중하고 놀라운 생의 경험이라는 것을. 이 가을도 결국은 여름의 결과요, 겨울의 원인인 것임을 잊고 가을 하나만 생각했습니다. 타인과 함께 어울려 생활하다보면 내 삶의 소소한 부분들이 깨어나 놀라운 경험으로 다가온 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보니 가을 분위기에만 잠겨서, 나라는 존재만 생각하며 살다가 놓쳐버렸던 아내와 딸아이의 얼굴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아줌마는 가을을 탄다는데.... 내 아내는 이 가을에 나몰래 나와같은 병을 앓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부쩍 잔소리가 많아지더이다. 이 모두 가을 탓입니다. 아니, 제 탓입니다. 제가 아내와 아이를 잠시 잊고 나만 사랑했습니다. 동그라미 하나 그려놓고 그 안을 저 혼자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혼자서 방송하는 재미에 빠져 아이랑도 놀아주지 못했습니다.

점심시간에 찾아간 식당 입구에 노오란 국화꽃이 어여쁘게 피었습디다. 오늘은 아내에게 국화꽃 한 다발을 선물하겠습니다.
혼자서 맘씨좋은 신랑 모르게 가을을 앓는 친구에게도 편지를 쓰겠습니다. 이 가을에, 온전하게 사랑하라고, 자기만을 위한 사랑이 아닌 주변의 타인들을 그리워하라고 쓰겠습니다.
참으로, 한 낮의 가을 햇살은 눈이 부시더이다.....


- 2001년 10월의 어느 가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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