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펌]매트릭스는 현실이다

길을 묻는 길냥이에게_the캣 2005. 9. 30. 00:22

[SC 칼럼] 정일훈, '매트릭스'는 현실이다


'나는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 리로디드'에는 그다지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못하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극중 지하 세계에 숨어사는 인류를 향해 모피어스가 던지는 연설문 속에서의 대사. 그런데 이 한 줄이 내게는 '매트릭스'라는, 의견이 분분한 영화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한 단초가 되었다. 그 대사 그대로, '매트릭스'는 미래사회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 어제와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엄연한 현실에 관한 것임을….

디지털을 주제로 만 2년이 넘도록 칼럼을 써오면서 필자는 '내가 손을 대도 되는 분야인가?'에 대한 공포심을 가졌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그러면서도 이율배반적으로 디지털의 테크놀로지적(的) 기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쓰는 디지털 칼럼도 의미가 있으리란 자기 최면을 끊임없이 걸어왔다. 디지털이라는 첨단 테크놀로지의 '적자(嫡子)'가 인간과 사회 속에서 길을 잃고 어떻게 미아가 되는지, 그것을 어찌해야 탈선의 길에서 온전히 데려와 사람의 체온을 잃지 않게 할 것인지, 아니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고,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디지털은 굉장한 능력을 지녔다. 시공을 뛰어넘어 과거에 이미 사라져 버린 것,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시각과 청각으로 완벽하게 재현해내는 능력을 가졌다. 거기에 마우스와 키보드 같은 한정된 도구로 상호 간섭할 수 있는 매개를 부여하고, 사람들을 '참여 중독'에 빠져들게 하는 탁월한 힘을 가졌다. 그 힘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주었고, 그것은 아날로그 시대 신의 권능과 비견될 만한 힘으로 인식된다. 하루 평균 한 두 시간의 웹서핑, 시도 때도 없는 CDMA 커뮤니케이션, 한달 평균 10여시간씩 컴퓨터 그래픽으로 완성된 영상물 감상….

이미 우리는 인생의 깨어있는 순간 대부분을 디지털의 지원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을 정신 없이 만끽하며 '삶의 위안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을 뒤틀어 뒤집는 순간, 디지털 라이프를 영위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제 활동을 이어가는 '작은 매트릭스' 세계가 눈에 보인다.


또 말하지만 디지털은 굉장한 세계를 우리 눈 앞에 펼쳐놓는다. 그러나 디지털이 만들어내는 세계 중 그 어느 것도 '진실'인 것은 없다. 왜냐하면 디지털의 기본 설계가 '복제와 변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엄연한 진실'을 '그것인 줄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디지털이 고작 그만한 능력을 가지고 오만방자한 생각을 갖지 못하도록 할 일이다. 애초에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셈틀'에 불과한 것이 사람을 잊지 못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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